『나의 몫』 - 파리누쉬 사니이
나의 몫 - 파리누쉬 사니이
이 책은 내 책이 되려고 했었을까? 처음에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을 하다가 나는 그만 이 책의 겉표지 때문에 내용이 궁금하여졌다. 히잡으로 얼굴이 가리어져 진한 녹색 눈망울이 아름다운 ‘이슬람 여인’에게 반했다고 볼 수 있겠다. 지난겨울 생일선물로 딸과 아들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했다. 이 책은 16,800원. 한 사람이 사기엔 일 만원이 넘는 가격이라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둘이 용돈을 합해서 사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케이 했다. 난 책을 살 때 함께 사는 이웃이 있다. 그녀는 어느 인터넷서점의 고급회원이라서, 내가 주문하는 책을 끼워서 같이 사면 혜택이 좀 있다. 그런데 그녀는 전화로 주문한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그 책이 뜨지 않는다고 하였다. 책이 안 보인다고 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일은 코앞으로 바로 다가왔기에 아이들이 주는 선물은 갑자기 피자 한 판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책이 신간이라서 그런가 하고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서 내가 재검색을 해보았을 때 그 책이 뜨길래, 그때서야 그녀의 검색이 잘못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문자를 했더니만 그녀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그녀는 '나의 몫'을 '나의 목'으로 알아듣고 검색을 한 것이다. 나도 그녀도 재확인을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몫을 다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것 같았던 그 책이 어느 독서회 100회 기념식에서 연말 다독상의 상품이 될 줄 몰랐다.
이 책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마수메"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이슬람 시아파의 순례지에서 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에게 삼촌은 돈을 벌려면 테헤란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진중하고 독실하여 기도나 금식을 빼먹는 적이 없는 큰오빠는 테헤란에 가면 신을 믿지 않게 된다고 반대했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 8학년 때 계속 낙제를 하다가 학교를 그만 둔 작은오빠는 이사를 가야 돈을 번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테헤란에서는 좋은 신랑감을 찾을 수 없다면서 거기로 가는 것은 딸들을 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남동생 알리는 자기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매들을 감시하겠다고 하면서 여동생을 걷어찬다. 여동생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들은 척하지 않았다. ’계집애한테 돈을 들이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계집애들은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하는 걸.’ 이라고 말한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들은 결국 테헤란으로 이사했다. 마수메의 오빠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려는 그녀를 반대했고, 그녀의 어머니는 바느질 교실에 다니는 것이 더 급하다고 하였다. 그녀는 빌고 또 빌고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를 설득하여 테헤란의 중학교에 등록을 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여자들이 온몸을 가리는 차도르를 입지 않고 눈만 드러내놓는 히잡도 쓰고 다니지 않는 그곳에서 그녀 혼자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를 하고 학교에 다닌다. 이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몇 페이지의 내용들은 바로 이 책 전체를 암시하게 된다. 그녀의 단짝 여자친구 "파르보네" 와 첫사랑 "사이드" 가 소설의 시작과 끝을 그리고 그녀의 사춘기와 인생후반전을 함께 한다. 마지막 628페이지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드라마틱한 삶과 사랑이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이 넘쳐흐르고 있다.
저자 Parinoush Saniee(파리누쉬 사니이)는 이란출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첫 소설 < 나의 몫 >에서 주인공 16세 소녀의 눈으로 현대 이란의 역사를 보여주었다. 종교의 이유로 억압받아왔던 이란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인상 깊은 소설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전후에 곳곳에서 쓰라린 고통과 종교적 독재국가에 반기를 든 반체제 인사들의 투쟁 또한 나오므로, 굳이 여성소설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진 않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권 탄압 내용 때문이었는지, 이란에서는 정부에 의해 두 번이나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녀는 이슬람 문화지도국에 강력하게 항의를 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그녀의 변호사로 활동해주고 있는 “시린 에바디“의 도움으로 결국 출간 허가를 받았다. 가장 먼저 판권이 팔린 이탈리아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됨과 동시에 문학상 최고 권위의 보카치오 상을 수상하였다. 이란 역사상 가장 인기 높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두 여인의 러브스토리가 담겨져 있다. 주인공 마수메의 러브스토리는 이 책 전체에서 그녀의 50년 세월을 꿰뚫고 있다. 소녀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 예비신랑을 한 번 만나지도 못하고 시집을 가야하는 마수메가 결혼식을 앞두고 반대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절반 돌아서 그녀를 때리려고 한다. 그때 이웃 파르빈이 마수메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탯줄을 자르던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던 남편감을 계모의 이간질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두 번이나 이혼을 한 부자남자에게 시집을 가야했던 자신의 심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마수메를 달랜다. 마수메의 신랑이 될 사람은 파르빈이 소개하였다. 파르빈은 예비신랑이 적어도 결혼식 다음 날 주먹으로 마수메를 때려 멍이 들게 하지 않을 남자, 그리고 그녀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해도, 그녀의 삶을 살게끔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수메는 그녀에게 신랄한 어조로 대꾸하였다.
모든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결혼식 날 아침에 식을 취소해달라고 하며 울면서 침대 밑으로 숨는 마수메를 보고, 어머니는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하얀 차도르를 입은 그녀의 결혼식은 이행되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신혼집 침실에 와 있었다. 이젠 그녀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신랑은 도살장에 끌려온 양 같은 눈길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겠노라‘고 말하고는 할 일이 있다면서 문을 닫고 나간다. 그의 서재에는 대학 교재로 썼을만한 법률서적도 소설과 시 전집이 많았다. 그녀는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이제 낯선 남자의 집에 혼자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며칠이 지나서야 돌아온 그는 그녀에게 왜 강제결혼을 했는지, 왜 학교교육을 더 받지 않았는지를 물어 본다. 그는 여자들이야말로 역사상 탄압을 가장 많이 받아온 사람이라고, 다른 집단으로부터 착취를 받은 최초의 집단이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 히미드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그녀에게 야간학교를 다닐 것을 권한다. 그녀를 지적으로 이념적으로 성장시킨 그는 같은 동지들과의 모임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그러나 위험스러운 활동을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사망 후에 그녀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이 소용돌이 속에서 직장을 찾고 자식들을 기르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종교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삶에 억눌림을 당하는 이슬람여인들의 몫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마수메의 어머니의 말처럼 각자의 운명은 태어나는 날 이마에 새겨져서, 그 몫은 하늘과 땅이 뒤집힌대도 바뀌지 않는 걸까? 이 땅에서 과연 마수메의 몫은 무엇이었을까?
어찌 보면 한국의 여인들이 과거에 쓰개치마와 장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였으며, 모두가 당연하게 여자에게는 가족에 대한 희생이 의무인 것처럼 살아왔던 것을 다시 훑어보는 것 같았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몫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 말이다. 공지영 작가가 <도가니>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것처럼, 저자도 억압받는 이슬람 여성들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것이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는 <The Book Of Fate : 운명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표지모델도 한국 서적과는 다른 데, 개인적으로는 < 나의 몫 > 이라는 제목과 겉 표지가 훨씬 더 맘에 든다.
- moon향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