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 사람들
- 정영선
근심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는 게 분명해
이 도시를 떠날 때 찾아가게 하는
조명으로 밤이 찬란해진 도시
사람마다 걱정을 맡기다 자신까지 맡긴 얼굴이다
높은 건물 탑의 번지점프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문으로 떠밀렸다
지중해 푸르스름한 하늘 천장
젊어진 저녁이 맞아주네
밖인데 안이다
가슴에 묻힌 것들이 줄줄 샌다
평생 막연한 기다림을 갖게 하던
늙은 저녁이 마지막 빠져나간다
곤도라 기사 이브가 구불대는 뱀 운하에서
산타루치아로 사람을 부른다
운하 따라 유리 진열장을 지나며 나는
묵힌 사랑, 늙은 고요의 손을 놓았다
오늘이 가면 그 가격으로는 살 수 없는 세일 기쁨들
물쇼, 불쇼, 행운을 당겨보라는 모험
고행 없이 내일을 잊게 하는 마취제
순간의 幻을 손에 쥐어주는 도시
금을 찾다 죽은 사람들의 잔해가
이 기류에 섞여 있다
응집력 없어 우루루 빠져들고 빠져 나가는 망령들
아침이면 죽음의 재를 쓴 성곽들에서
허름한 타국인들이 출몰한다
어슬렁 느린 걸음으로 밤의 쓰레기를 수거한다
하루 저녁의 유토피아를 사고파는
사막도시, 라스베이거스는
내 안에서 먼저 팔리고 있다
—《현대시》2015년 4월호
정영선/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
Elegy - Haneda Ryo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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