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27

봉제동 삽화 - 김성철

봉제동 삽화 - 김성철 천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 소나기의 망치질 소리가 시작되면 늙은 배선이 어김없이 누전 빙자한 어둠을 불렀다 여공들의 환한 치아가 깜빡깜빡 불 밝히고 재단사 김씨는 하늘위로 쌓아올려진 회색원단 눈길로 만지며 납품기일 손꼽는다 창틀 등지고 불어오는 바람 미싱 선반 위로 펼쳐진 꽃길타고 달려간다 손 맞잡은 여공들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 꽃길 위로 걸어 들어간다 피지 못한 꽃들이며 줄기 오르지 못한 실밥들이 보푸라기 흔들며 반긴다 페달 밟는 미싱공 꽃들에게 먼저 수인사 건네자 웃자란 실꽃들 서둘러 뿌리 걷으며 손에 핀 봉제선 위로 올라탄다 때 묻은 손목, 손목들 산수유열매처럼 붉게 흔들린다 재봉중인 꽃술이 실밥을 흔들었으나 접근금지를 알리는 도안선이 유난히 날을 세운다 작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