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봉제동 삽화 - 김성철

moon향 2015. 11. 13. 19:46

 

 

 

봉제동 삽화 - 김성철

 

천둥 번개가 치자 공장엔 정전이 찾아왔다

소나기의 망치질 소리가 시작되면

늙은 배선이 어김없이 누전 빙자한 어둠을 불렀다

여공들의 환한 치아가 깜빡깜빡 불 밝히고

재단사 김씨는 하늘위로 쌓아올려진

회색원단 눈길로 만지며 납품기일 손꼽는다

창틀 등지고 불어오는 바람

미싱 선반 위로 펼쳐진 꽃길타고 달려간다

 

손 맞잡은 여공들 바람의 허리춤을 잡고

꽃길 위로 걸어 들어간다

피지 못한 꽃들이며 줄기 오르지 못한 실밥들이

보푸라기 흔들며 반긴다

페달 밟는 미싱공 꽃들에게 먼저 수인사 건네자

웃자란 실꽃들 서둘러 뿌리 걷으며

손에 핀 봉제선 위로 올라탄다

때 묻은 손목, 손목들

산수유열매처럼 붉게 흔들린다

 

재봉중인 꽃술이 실밥을 흔들었으나

접근금지를 알리는 도안선이 유난히 날을 세운다

작업반장의 기침소리와 함께 기지개 다시 피는 형광등

주파수 맞추는 고물전축, 후후 바람 불어 목청 가다듬고

여공들은 와 하며

공장안으로 퉁긴다

 

봉제동 수출공장

시동 거는 미싱들 서역 향한 길을 재촉한다

실크로드 사막의 모래처럼 날리는 보푸라기

 

봉제동 여공들은 실크로드를 걷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서거 45주기입니다. 1948년 대구 출생 전태일은 아버지의 공장 사정이 나빠져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나이 스물에 동대문 평화 시장 재단사가 되었지만, 열악한 환경과 과도한 노동으로 직업병을 얻은 여공을 돕다가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공장에서 쫓겨났지요. 배움이 짧았던 젊은이가 근로기준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장상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다가 또 해고됩니다. 노동청과 시청에 진정서를 냈어도 답을 얻지 못한 그는 '평화 시장 근로 개선 진정서'를 만들어 노동청장과 여러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경향신문에서 기사(1970.10.7)를 내주었습니다. '골방서 16시간 노동'이라는 기사는 피복 공장에서 혹사당하는 2만여 명의 소녀들의 근로 조건이 영점이라고 밝혔습니다. 여론이 무서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공장 사장은 그냥 참으라고 했습니다. 노동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한 알의 밀'이 되기로 태일은 결심합니다.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의 인권도 보호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식 하기로 결의하고 동료들과 시위합니다.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무산되자, 그는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어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불꽃은 순식간에 온몸에 옮겨 붙었어요. 그 처절한 몸부림을 본 사람들은 그제서야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당부를 외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지만 끝내 숨을 거두었어요. 누군가의 분신이라는 파국에 이르러서야 무지를 깨닫는 일은 다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봉제동 삽화'는 200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김성철 시인은 1973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등단했습니다. 봉제동이라는 동네가 있을까요? '봉제동 여공들은 실크로드를 걷는다'는 해피엔딩은 가능할까요? 봉제 공장을 동네로 비유하여 여공들의 일상을 각각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킨 듯 잔잔하게 이야기하는 시입니다. 삽화가가 세밀화를 그린다면 시만 보고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었을 때 공장에서 한 달도 일해 본 적 없으면서 노동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부끄럽습니다만, 전태일이 일했던 공장 상황 기형도의 시 '안개(http://blog.daum.net/yjmoonshot/2494)'와 유사합니다. 기형도는 1985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이 시로 등단하지만,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했지요. 친구들의 도움으로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유고시집을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공장을 소재로 시를 쓴 김성철 시인은 기형도의 시에서, '안개' 전태일에게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영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영감이 통하는 곳이 서역을 향한 실크로드일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처럼 두 청년은 마감을 너무 앞당겨 떠났어요. 공장에서는 완제품의 납품 기일을 지키는 게 중요하겠으나, 인생 마감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산다고 완생(完牲)이 아니겠지요? 오늘 전국적으로 퉁기는 비는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죽음을 한번 더 생각해달라고 외치는 듯해요. 아름다운 청년에게 이 음악을 바칩니다. - moon향 드림, Lotus of heart - Wang Sheng 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