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256

고향 열차 - 윤중목

고향 열차 그저 주머니 담배 한 갑이면 좋다. 가고 오고 왕복 기찻삯에다 출출하면 사먹을 한 그릇 국수값이면 족하다. 거칠 것 없이 가난한 몸을 싣고 겨우내 웃자란 볼그라진 생각들일랑 봄바람에 훌훌 털어 떠날 일이다. 창쪽 자리면 더욱 좋다. 달려드는 산이며 물이며 들길 따라 오므라든 숨구멍을 마음껏 벌름대렷다. 따스한 햇살에 졸음이라도 내려 차창을 베개 삼아 꾸벅꾸벅한들 누구 하나 뭐랄 사람도 없잖나. 고개 들어 휙 하니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낯익은 말투, 옷차림, 얼굴 표정들. 덥석 손이라도 잡아끌고 싶어진다. 고향으로 가는 열차 안에는 벌써 고향 마을 흙냄새며 고향 사람 살냄새가 흐드러진 들꽃처럼 피어오른다. - 윤중목 시집(http://blog.daum.net/yjmoonshot/4239) 객지..

9H - 홍일표

9H 잠 못 드는 몸을 웅크리고 연필 속으로 들어가 화석이 된 계절이 있다 흰 종이 위에 너를 펼쳐 적는다 굽이굽이 이어 진 선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지워져서 숨기 좋은 골목이 나 타나고 먹통의 전화선을 목에 감고 죽은 낮달이 보인다 발 목 없는 그림자처럼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한 입 속의 말들 깊은 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나무속에 박힌 연필심이다 가늘고 긴 광맥을 누군가는 보긴 볼 테지만 나는 아직 발설 하지 못한 밤을 내장하고 있어 쥐눈이콩처럼 까맣게 눈뜨 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별로 오해하거 나 반딧불이를 잡겠다고 포충망을 들고 다가올지 모르지만 나는 부러진 연필심을 발견한다 밤의 밀어를 받아 적던 심야의 속기사를, 사각사각 종이 위를 혼자 걸어가던 등만 보이는 한 남자를 낡은 서랍..

기도1 - 서정주

기도1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하눌이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던지, 날르는 몇 마리의 나비를 두시던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니와 같이 하시던지 마음대로 하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여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6_201803300942378566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 끝에 40억 원에 낙찰된 김환기 작가의 구상 작품 '항아리와 시(1954)'이다. 왼쪽에는 항아리 그림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서정주의 '기도1'을 써놓은 것이다. 시적 화자의 마음은 텅 빈 항아리 같고, 텅 빈 들녘 같기도 하단다. 더 모진 바람을 불어넣으시든지 몇 마리 나비를 날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