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무덤
눈으로 새를 만들어 나무의 심장 속에 넣었습니다
새는 부리가 하얗습니다 여러 개의 아침이 쏟아져 나오고 여러 개의 생각들이 잣나무 가지에서 사카린처럼 반짝입니다
멀리까지 날아가 색을 버린 새들의 미래
함박눈이 날립니다
갓 태어난 눈사람이 걸어옵니다
허공을 건너고 도로를 횡단하고 터널을 지나고
다리가 있습니까?
들끓는 말에 놀란 얼굴이 녹아내립니다
말 한 번 건네 보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는 연애입니다
다섯 살 아이가 웃음을 꽂아주고 갑니다
해 저문 여자가 울음을 꽂아주고 갑니다
입과 눈을 떼어내고
다리를 잃어버린 구름처럼 몸통 하나로 일생을 완성합니다
새들이 발목 없이 떠도는 지상
허공은 눈사람을 입에 넣고 녹여 먹는 중입니다
어제 스물일곱 눈꽃 같은 신부가 죽었습니다
공중은 아무리 찔러도 피가 나지 않는 밤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새들이 돌 속으로 들어가 무늬가 됩니다
- 『밀서』홍일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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