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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moon향 2017. 4. 10. 15:14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 이정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산다

 자주감자가 첫 꽃잎을 열고
 처음으로 배추흰나비의 날갯소리를 들을 때처럼
 어둔 뿌리에 눈물처럼 첫 감자알이 맺힐 때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 때문에, 운다

 목마른 낙타가
 낙타가시나무 뿔로 제 혀와 입천장과 목구멍을 찔러서
 자신에게 피를 바치듯
 그러면서도 눈망울은 더 맑아져
 사막의 모래알이 알알이 별처럼 닦이듯

 눈망울에 길이 생겨나
 발맘발맘,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

 눈망울에 날개가 돋아나
 망망 가슴, 구름에 젖는 깃들 때문에

 


 - <월간 에세이> 2016.10.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이라면, 이정록 시인의 표현처럼  '싱그럽고 반갑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눈물겹고 흐뭇하고 뿌듯하고 근사하고 짜릿하고 감격스럽고 황홀하고 벅차다' 같은 형용사가 어울리는 작고 여린 것들이겠지? 작은 티끌 하나만 눈에 들어가도 가려워서 눈을 비비다가 그만 빨개지고 눈물이 뚝뚝 나오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데, 그런 게 가능한 목록이 있다면 그것들을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 그렇겠지? 안 보면 눈에 밟히는 것들 때문에  '섭섭하고 서글프고 얄밉고 답답하고 못마땅하고 어이없고 야속하고 처량하고 북받치고 원망스럽고 애끓고 두렵다'는 감정이 맑은 눈망울에 발맘발맘 길을 만들고 날개를 돋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목록에 들어갈 이들은 주로 가족과 연인일 텐데, 그들을 가까이 볼 수 없다면, 찾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면, 얼마나 먹먹할까? 먼 데 향해 눈을 붉히고 울다가... 어쩌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겠지. - momo 올림


 

 배경 음악 Melodia - George Skaroul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