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기형도 안개 - 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7.30
전문가(專門家) - 기형도 전문가(專門家) - 기형도 이사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의 집 담장들은 모두 빛나는 유리들로 세워졌다 골목에서 놀고 있는 부주의한 아이들이 잠깐의 실수 때문에 풍성한 햇빛을 복사해내는 그 유리담장을 박살내곤 했다 그러나 얘들아, 상관없다 유리는 또 갈아끼우면 되지 마음껏..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28
위험한 가계(家系) - 기형도 위험한 가계(家系) - 기형도 1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 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을 등을 기댄 ..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21
오래된 서적(書籍) - 기형도 오래된 서적(書籍) -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 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 되는 내용들을 가지고 서로의 ..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18
대학시절 - 기형도 대학 시절 -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왔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17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14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정거장에서의 충고 - 기형도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12
오후 4시의 희망 - 기형도 오후 4시의 희망 - 기형도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6.02
흔해빠진 독서 - 기형도 흔해빠진 독서 / 기형도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 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 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수북한 턱 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5.31
숲으로 된 성벽 - 기형도 숲으로 된 성벽 - 기형도 저녁 노을이 지면 神(신)들의 商店(상점)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성)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사원)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 詩 詩 詩.....♡/ 백 석 & 형 도 201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