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눈 비 봄 길 섬

봄밤 - 강연호

moon향 2014. 5. 20. 16:16

 

 

   봄밤 - 강연호

 

 

  낮에 지나쳐온 거리마다 분분했던 꽃잎

  집에 돌아와보니 몇 장은 우표처럼

  어깨 한 귀퉁이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네

  나는 과연 제대로 배달된 것일까

  수취인 불명의 편지마냥 우두커니 서서

  우주의 어둠으로 어두운 방을 들여다보네

  창밖으로는 인공위성처럼

  밤늦은 시민공원 운동장을 공전하는 사람들

  한번 궤도를 이탈하면

  다시는 진입하지 못한다는 듯

  고분고분 트랙 안에서 걷거나 뛰고 있네

  어디선가 끙끙 전화벨이 울다 지치면

  가끔 연락하며 살자는 세상도

  끙끙 앓다 지칠 테고

  건너편 아파트는 띄엄띄엄 불이 켜지거나

  켜졌던 불 다시 꺼지거나

  쉴 새 없이 모스 신호를 날리고 있네

  엘리베이터는 바쁘게 오르내리고

  잘못 배달된 통닭은 식어가고

  맥주는 김이 빠지고

  어디선가 문이 쾅 닫히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나는 한숨 쉬고 꽃잎 한 장 떼어내고

  또 한숨 쉬고 꽃잎 두 장 다시 붙이고

  영영 궤도를 잃고 떠돌 것만 같은 봄밤이네

  무말랭이처럼 꼬들꼬들한 봄밤이네

 

 

 

-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 (문예중앙,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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