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우리들에겐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이고, 얼마 전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로도 등장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느낌을 떠올려보자면.. '황당하다'였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몸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동물들이 친구처럼 보였다가, 적처럼 행동하다가.. 마치 정신병동의 환자들을 대하는 느낌. 이야기가 무엇을 향해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긴장감도, 흥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아무 일이나 마구 일어나는데, 까짓것 앨리스가 죽으면 어때. 누가 와서 또 살려주겠지.'
삶과 괴리된 공간에서는 흥분도, 감동도, 의문도 가질 수 없다. 지나치게 낯선 땅에서는 괴물도, 요정도 시선을 끌지 않는다. 무슨 기적이 일어나도 신기하지 않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걸..
우리의 교실, 혹은 강의실에서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데, 아무것도 와닿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새로운 것들인데, 전혀 신선하지 않다. 이 다음 장에 무슨 이야기가 튀어 나와도 전혀 놀랄 것 같지 않다. 그런가보다 하고 아무 충격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속으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걸..'
우리가 다른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마디 대화에 신경이 곤두선다.
'아, 그녀가 갑자기 떠나버리면 어떻게 하지?'
'주인공이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분명 이 사람이 범인일거야.'
자기 생각이 맞을 때는 탄성을 지르고, 앞 뒤가 안맞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 하면 책을 집어던진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군. 괜히 읽었어.'
차이가 무엇일까?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우리는 마치 그 사건 속에 개입된 사람인양 여긴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의 배경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비록 마법사와 용이 나오는 판타지라도, 또 나비와 꽃이 말하는 동화같은 세상일지라도 모두 우리의 현 세상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교과서들, 참고서들, 강의 교재들을 보면 첫 장을 넘기면서 숨이 막힌다.
'이상한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는 듯 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 내가 사는 공간, 내 친구들을 그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나의 지식과 상식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내 머리에 든 것을 완전히 비워내고 그 지식들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서점에 꽂혀있는 물리 분야 책들>
물론, 우리가 배우는 모든 지식과 이론들은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며, 내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가 너무 약해서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많은 지식들은,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교사들은 자신의 세상에서 앉아 가부좌를 튼 채,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내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나의 세계로 들어와. 그리고 내 방식대로 생각하고 내 말대로 움직여."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런 방식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그들이 보여주는 신비롭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왜 논리적인지, 그들의 발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이 결론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전달해 주지 못한다. 너무 낯선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가 보여주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학생은 교사와 지식이 구축해 낸 세상에서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아무 할말도 없고, 의의를 제기할 것도 없다. 학생이 무슨 질문을 하거나 반박하려 들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만 같다.
"네가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거야!"
또는
"이 세계에서는 원래 그래!"
왜 이런 악습이 쉽게 고쳐지지 않을까? 주입식 교육이 위험하고 무익하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왜 비판적, 창조적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내 수업을 보아도 그렇고, 다른 사람의 수업을 들어봐도 그렇다.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일단 두가지 측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가르치는 교사의 '수월성'과 '안정성'이다.
첫째는, 그 방식이 교사의 입장에서 훨씬 쉽기 때문이다. 교사는 그 지식체계 안에 들어가 그 지식에 익숙해지면 된다. 다른 바깥 세상의 일들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교사의 지식엔 한계가 많다. 교사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도 이 지식의 체계 안에는 아직 이해되지 않는 것들, 어려운 것들이 산더미처럼 산재해 있다. 이런 와중에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학생들은 어떤 입장에 있는가?" "이 사실이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알고 싶어할까?"
교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이런 질문과 고민들은 이차적인 것으로 유보되고, 지식을 확실히 다지는 것을 교사의 더 우선적인 의무로 여기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어떤 분야의 대가들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초보적인 지식이라 할지라도 훨씬 생동감있게 전하는 방법을 아는 듯 하다. 그들이 특정한 교수법을 익혔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에 충분히 익숙한 만큼 청중의 세계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둘째는, 그 방식이 교사의 입장에서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식을 완전하게 통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노력을 하면 상당부분 성취할 수 있다. 이 때 교사는 자신 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지식을 소화해 낸다. 여기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이 지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때 발생한다.
학생들이 지식을 대할 때는 교사가 그 지식을 이해했던 것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입장과 경험과 개성을 사용해서 지식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결국, 한 교실 안에서 학생 수만큼 서로 다른 지식 습득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학생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할 만큼 폭넓은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서 생겨나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의 질문들, 오해들, 비판들을 수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학생이 하나의 질문을 하면, 그 짧은 순간 교사는 학생의 입장이 되어야 하고, 그 질문의 본의를 파악해야 하고, 그 답을 찾은 후, 학생의 언어로 그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질문이 요구하는 지식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는, 소통의 과정이 어려운 것이다. 교사가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말을 미적대거나 학생의 언어로 설명해주는 것에 실패해서 엉뚱한 대답처럼 보였을 경우, 자칫 교사의 지식 부족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데, 그것은 교사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도 잘 모르나 봐."
이런 말은 교사의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그래서, 교사는 이런 모험을 하기 꺼려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안전하다.
"너희들 장단에 다 맞춰주다가는 끝도 없겠다. 그냥 내 방식대로 따라와주렴."
이 교실은 학생들이 아는 그런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 이상한 세상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순응하기를 촉구한다.
그러므로 주입식 교육을 비판적, 창의적 교육으로 전환하는 일은 의식만 바꾼다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는 교사가 하나의 수업을 준비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중학교나 초등학교 수업이라도 그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하려면 상당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단순하고 초보적인 내용을 가지고...'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 '공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과 어느 정도의 개인적인 관계들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간의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 앞에서 완벽하고, 빈틈없는 선생으로 서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선생님도 모르는 게 많으며,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배우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비판적, 창의적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의 학교 시험에서 더 낮은 성적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험에도 나오지도 않을 문제를 가지고 매번 고민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니 말이다. 시험 점수로 교육의 성패를 판단하려는 사회 분위기에서 주입식 교육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은 교육이라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매일 교실에서 정의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러므로 교사와 학생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참된 교육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조금씩의 희생을 감수한다면 결국 우리는 교육환경을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한 발을 내딛는다.
"우리 선생님은 진짜 똑똑해."
정말 뛰어난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 대신 다음의 말을 듣게 된다고 한다.
"사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 별로 없어. 다 우리가 알아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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