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목공 집
김령
톡톡 아침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제 마악 터지기 시작한 살구나무 꽃망울에 큼지막한 빗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비가 와서 다행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갑자기 쏟아지는 비는 걱정거리다.
엄마가 집에 있을 때가 좋았다. 비 오는 날 마중 나오던 엄마는 마트에 계산원으로 취직을 했다. 주말에만 집에서 쉰다. 아빠는 가구 만드는 사업을 한다고 지방으로 가서 오지 않고 있다. 집에 다녀 간 지 언제인가 가물거린다. 육 개월은 지났을 것이다.
빗방울아래 왼손을 손금이 드러나도록 쫙 폈다. 빗방울이 또르르 손바닥 안에서 돌았다. 손바닥을 동글게 말고 빗방울을 움켜잡았다. 모아진 빗방울이 손바닥에서 줄줄 흘러 내렸다.
그때 갑자기 부릉 부르릉 자동차 소리가 가까이에서 났다. 소리의 주인공 파란색 큰 트럭은 우리 집 앞에 멈췄다. 차 문이 활짝 열리고 아빠가 내렸다. 드디어 아빠가 돌아왔다.
트럭에는 크고 작은 가구들이 꽉 차 있었다.
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우와, 우리 딸, 어디보자. 그 사이 많이 컸네!”
아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꼭 안아 주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라면서도 아빠를 꼭 안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눈을 깜박이며 참았다.
엄마는 식탁을 치우지 않고 소파에 누워 밀린 드라마를 보는 중이었다. 아빠가 들어오자 엄마는 벌떡 일어났다. 엄마를 쳐다보니 별로 반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재빨리 욕실에서 뽀송뽀송한 수건을 가지고 나왔다. 아빠가 작업복을 벗는 곁에서 수건을 들고 있었다. 아빠는 웃으며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누가 오셨나? 못 보던 트럭이 있구만.”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 집 할아버지였다.
마당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예! 울 아빠 오셨어요. 아빠 차에요.”
나는 명랑한 목소리로 크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궁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책상과 의자가 많네. 아주 잘 만들었구만. 누가 만들었어?”
할아버지는 책상 다리를 무늬 결 따라 만지며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할아버지가 어서 가기를 바라며 문을 천천히 닫았다. 나는 아빠가 씻는 동안 괜히 소파에 앉았다가 안방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 왔다 갔다 했다.
“하영아, 그러지 말고 이리 와.”
설거지하던 엄마가 식탁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쿵쿵 소리가 나게 뛰어 식탁 의자에 날다람쥐처럼 냉큼 올랐다.
“그렇게 좋아?”
엄마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그으럼, 좋지? 엄마는 안 좋아?”
엄마는 대답 대신 밖을 보았다.
아빠 파란 트럭이 보였다. 가구들 위에 걸쳐 놓은 비닐에도 빗방울이 고였다. 책상 의자가 교실 안에서처럼 줄지어 있었다. 포개져 있어서 그렇지 꽤 많아 보였다.
달그락거리는 냄비 뚜껑 소리가 났다. 아침시간이 지난 지 한참인데 아빠가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 서 있었다. 그 사이 엄마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김치찌개 냄비를 식탁에 올렸다.
아빠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데 손가락이 떨렸다. 아빠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곰 인형을 빼냈다. 곰 인형은 아빠의 목도리를 걸치고 낡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아빠는 곰 인형은 보지도 않았다. 곰 인형을 뺀 자리에 엉덩이만한 별 문양이 움푹 들어 새겨져 있었다. 아빠는 손으로 별을 따라 그렸다.
“아, 바로 이 냄새야.”
김치찌개에 코를 벌름거리며 아빠가 자리에 앉자 엄마는 안방으로 가 버렸다. 음식을 앞에 두고 아빠와 마주 보고 앉았다. 아빠는 허겁지겁 찌개 국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빠 천천히 많이 드세요.”
찌개를 듬뿍 떠 넣어서 볼이 튀어나온 아빠가 우스꽝스러웠다.
“엄마 뭐하시니?.”
“엄마아!”
나는 식탁에 앉은 채 큰 소리로 불렀다
“왜애?”
엄마가 높은 음으로 짜증을 냈다.
아빠는 몹시 배가 고팠는지 밥을 두 공기나 드셨다. 그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은 것 같았다. 놀라운 속도로 나랑 엄마가 먹고 남긴 음식이 사라졌다. 멸치볶음과 구운 김 몇 장과 김치찌개가 싹싹 비워졌다.
지방에 사는 친한 친구와 가구점을 차린다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간 아빠. 거리가 멀고 주문이 밀려 바빠서 집에 올 수 없다고 하면서 엄마와 나를 내버려두었던 아빠다. 엄청난 돈을 벌어 오겠다고 큰 소리 치며 나갔던 아빠였다.
다음 날 말끔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학교에 갔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던 학교였는데 오늘은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아침 자습 시간에 선생님이 새 학년에 필요한 서류를 나눠주셨다.
집에 아빠가 있다는 건 특별한 기분을 만들어주었다. 학교시계는 아예 고장 난 것 같았다. 계속 마음이 붕 떠서 공부가 들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갈 때는 아예 뛰다시피 했다. 며칠 전만 해도 텅 빈 집안에 들어가기 싫어 느릿느릿 걸었는데.
아빠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헉헉대며 선생님이 주신 서류를 내밀었다. 아빠가 반 쯤 타들어간 담배를 재빨리 껐다. 아빠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빠아, 여기 직업에 뭐라고 적어야 해요?”
“예술가.”
대답하는 데 일 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아빠가 예술가라고요? 무슨 예술가인데요?” “음, 그냥. 가구 디자이너라고 할까?”
아빠가 멋쩍게 구레 나루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빠 직업에 ‘가구 예술가’라고 써 넣었다.
하루 밤 사이에 우리 집은 예전 생활로 되돌아왔다. 아빠는 뭔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멍한 표정이다. 치우지 않은 버릇도 그대로다. 머리도 길고 덥수룩한 수염까지 진짜 예술가처럼 보인다.
저녁준비 하는 엄마에게 아빠 직업을 물어보았다.
“직접 물어보지 왜?”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벌 받는 심정이 되어 조그맣게 말했다.
“엄마, 아빠 예술가래?”
“진짜, 잘났다. 예술가 좋아하시네. 이젠 아예 대놓고 뻥치네.”
엄마는 수돗물을 왕창 틀어 그릇들을 헹구면서 중얼중얼 화를 냈다. 엄마는 아빠 없는 동안 엄청 변했다. 수다쟁이 엄마는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처럼 말을 안했다. 동네 마트가 아닌 버스로 30분이나 걸리는 다른 동네 마트에 취직했다. 엄마의 고생을 알기나 할까? 내가 밤마다 아빠 어서 돌아오라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엄마와 아빠 소식 기다리느라 마음 고생한 것이 속상해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빠는 외출 중이었다. 거실소파에 수건이 걸쳐있고 바닥에 양말이 어질러있었다. 밥 먹은 그릇도 식탁에 그대로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엄마가 보면 또 잔소리 할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갔다. 반찬그릇도 냉장고에 넣고 수건과 양말을 세탁통에 가져다 놓았다. 발가락이 빠져나올 정도로 헤진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발가락 냄새를 맡다가 코를 움켜쥐었다. 쓰레기통에 양말을 던져버렸다.
퇴근한 엄마 양 손에 비닐봉지가 여러 개 매달려 있었다. 비닐봉지에는 오징어와 생태며 싱싱한 조개가 들어있었다. 엄마는 비닐봉지를 안에 두고 마당으로 나왔다.
“오늘 햇볕이 좋았는데 비닐을 그대로 두었네?”
엄마가 혼잣말하며 트럭을 감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냈다. 언뜻 보이는 의자 몇 개에 우리 집 식탁 의자에 있는 별 문양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손대지 마, 그냥 둬! 우리 것 아니야.”
언제 돌아왔는지 아빠가 엄마가 벗겨 낸 비닐을 다시 씌우며 거칠게 말했다.
“곧 주인 찾아 갈 것들이야. 그냥 둬도 돼.”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엄마 눈치를 보며 아빠가 말했다.
엄마는 거실에 널려 있던 음식 재료들을 발로 밀치며 문을 쾅 닫아버렸다. 아빠는 트럭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아빠가 오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나 둘이서 조용히 살 때는 아빠가 무척이나 그리웠는데 실제 상황은 두근두근 심장이 뛸 만큼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참 후에 머리를 질끈 묶은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입을 꾹 다물고 음식을 만들었다. 해물이 듬뿍 들어간 매운탕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밥상만 차려놓고 방으로 가는 엄마를 안아 자리에 앉혔다.
“엄마도 같이 먹어요.”
“우와. 해물탕 냄새 대박이다.”
아빠한테 가려고 일어서는데 코를 킁킁거리며 들어서고 있었다.
엄마는 밥을 아주 조금만 덜었다. 나는 더 먹고 싶었지만 엄마 편이 되고 싶어 조금만 먹어야 했다. 아빠는 ‘식욕은 곧 삶의 의욕이야.’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아빠가 쩝쩝 맛나게 먹는 소리가 무척 거슬렸다.
빈 그릇들을 치우며 엄마가 입을 열었다.
“저 가구들은 뭐고 이제 어떻게 살 거에요?”
낮고 무거운 엄마 목소리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너무 재촉하지 마! 곧 좋은 일들이 생길거야.”
태평한 아빠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벌떡 일어나 안방에 들어갔다. 책장에 꽂혀 있던 서류봉투를 꺼내 아빠 발아래 던졌다. 아빠 이름으로 온 우편물들이었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보내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빠가 시벌개진 얼굴로 우편물들을 집어 들었다.
“당신이 가구 예술가라고? 흥,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안방 화장대위에 있던 서류가 엄마 손에서 휘날렸다.
“왜? 하영이한테는 창피해? 백수라고 하지. 아니, 신용불량자 라고 해, 그래 남들 일할 때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다 굶어 죽은 베짱이도 뮤직 아티스트였겠네.”
그동안 엄마가 말을 아낀 것은 오늘을 위해서였을까? 뻥튀기 기계 속에 든 옥수수처럼 한꺼번에 말이 튀어나왔다.
“이솝이 요즘에 살았으면 함부로 베짱이 죽었다고 못 했을 텐데 아쉽다. 노래하고 기타치고 즐겁게 살면 절대 죽지 않을 텐데. 오디션에 나가 상금을 타고도 남았을 텐데 안 그러니? 하영아?”
아빠가 나를 보자 가슴이 쿵쾅쿵광 요란하게 뛰었다.
한밤중이 되자 응급차 달리는 삐뽀 소리가 들리다 멀어졌다. 엄마와 자다가 혼자 자려니까 자꾸만 깼다. 나는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00까지 세니 오히려 눈이 더 커지고 정신이 말똥해졌다. 이번에는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외우기로 했다. 학년이 바뀌어서 별로 아는 아이들 이름이 없었다.
오줌을 누면 잠이 올 것 같아 겨우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을 문을 덜컥 열었다. 아빠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울고 있었다. 화장실 거울에서 아빠의 눈물과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급히 문을 닫아버렸다. 뒤척거리다 보니 어느새 창문 밖이 환하게 밝아왔다.
급식 실 창문 밖에 작은 새들이 쫑쫑 찌찌 노래하다 포르르 나무 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최고 좋아하는 새우튀김이 나왔지만 한 개만 먹었다. 옆에서 내 눈치를 살피던 짝꿍 종혁이에게 새우튀김을 몽땅 옮겨 주었다.
“하영아, 혹시 너 사춘기야? 살 빼려고 그래?”
눈이 휘둥그레진 종혁이가 물었다. 종혁이는 2학년 때도 짝꿍이어서 내 식성 정도는 훤히 꽤 뚫고 있었다. 나는 대답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점점 하늘이 어두워졌다. 꽃샘추위가 이 정도일 줄이야. 봄 재킷을 입었는데 뼈 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바람이 운동장 먼지들을 몰고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불었다. 태풍 같은 심한 회오리바람에 재킷 단추를 꼭꼭 여몄다.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렸다. 바람이 등을 심하게 떠밀었다.
교문 앞에 낯익은 파란 트럭이 있었다. 아빠 트럭 같은데 아빠도 트럭 위 책상 의자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문이 조금 어긋나 삐걱거렸다. 불안한 생각에 차 소리가 날 때 마다 고개를 내밀고 살펴보았다.
덜컹 덜컹 무서운 소리가 쉴 새 없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와장창 쿵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이웃 집 창문이 깨져있고 대문이 한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세찬 바람을 낡은 대문이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담장에 금이 가고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다. 할아버지가 대문 옆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해 구급차를 보내달라고 했다. 더듬거리며 주소를 알려주었다. 내 눈 앞으로 피투성이의 할아버지 손이 보였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살구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내 머리를 때렸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정신이 드니? 얘야.”
낯선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아저씨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엄마는 곧 오실거야. 정말 고맙다.”
“할아버지는요?”
“출혈이 심했는데 다행히 위험한 순간은 넘겼단다. 왼팔이 골절이래.”
옆 침대에 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있었다. 팔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하영아, 괜찮아?”
엄마가 거의 울먹이며 뛰어왔다.
“무척 놀라셨죠? 피를 보고 기절한 것 같은데, 별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엄마는 아저씨 말은 대충 들으며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떡해, 어쩌면 좋아’ 자꾸 중얼거렸다. 안절부절 못하며 아빠에게 전화를 여러 번 했다.
해가 어둑해서야 아빠가 병원에 찾아왔다. 엄마는 아빠에게 안기다시피 기댔다. 어젯밤 심한 부부싸움을 기억 못하는지 엄마가 편안해보였다.
영양제 한 병을 다 맞을 동안 아빠는 이웃집 아저씨와 복도에 나가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두고 우리 가족은 아저씨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찌그러진 대문과 무너진 이웃집 담장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대공사가 되겠군.”
늦은 밤에 음료수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병원에서 만났던 아저씨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혈압에다 뇌경색까지 있어서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큰일 날 뻔 했어요. 기어이 혼자 지내시겠다고 고집피우시더니. 좋은 이웃을 두어 다행입니다. 이번 기회에 무너진 담장을 아예 없애려고 해요.”
아저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 후에 퇴원해서 통원치료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웬일로 아빠가 상추를 씻고 접시를 꺼내 식탁을 정리했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빠는 기분 좋은 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빠, 트럭에 있던 책상하고 의자들을 어떻게 되었어요?”
“음, 내일 학교에 가보면 알게 될 거야.”
나는 학교 앞에 있던 파란 트럭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겹살 굽는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찼다. 우리는 상추쌈을 싸서 입이 찢어져라 서로에게 밀어 넣었다.
이른 아침부터 쿵쿵 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빠는 할아버지네 대문을 뜯어내고 있었다. 학교에 가면 아빠가 만든 책상과 의자를 찾을 수 있다고 했지. 나는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며 학교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아빠 의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교실은 그대로였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일기검사를 하고 있었다. 혹시 선생님 의자가 바뀌었나 했는데 빨간 방석이 깔려 있어서 아빠 별 문양을 찾아낼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급식실에 가는 길이었다.
교무실 복도에 의자들이 잔뜩 나와 있었다. 오래 되서 낡은 의자들이었다. 나는 열려있지 않은 교무실 안을 들여다보느라 캥거루처럼 뛰어올랐다.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웠다. 뛰는 걸 멈추고 문을 살짝 열었다. 선생님들도 급식실에 갔는지 거의 비어있었다. 의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등을 쳤다.
“볼일 있으면 들어가지 뭘 보고 있니?”
다행히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었다.
“참, 교무실 책상과 의자 하영이 아빠 작품이라는데. 아빠가 멋진 가구 예술가시구나. 엉덩이별에 앉아 있으면 진짜 편안해. 고맙다고 전해 드리렴.”
급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만 듣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아빠 칭찬을 새기고 또 새겼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무너진 담장을 아예 없애버렸다. 대문을 뜯어내니 옆집과 문턱이 없어졌다. 담장을 허무니까 우리 집 마당까지 넓어졌다. 바깥벽을 인디안 핑크로 칠을 해놓으니 동네가 훤해졌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기웃거렸다. 마당에 내놓은 의자에 쉬어가는 어르신들도 생겼다.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아빠 일거리가 생겼다. 대문을 뜯고 칠을 하고 뚝딱 뚝딱 고장 난 가구들을 고쳤다. 아빠 손을 거치면 멋진 그림이 되고 다시 쓸 수 있는 가구들이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할아버지가 아빠를 불렀다.
“쭉 지켜보니까 자네는 눈썰미도 있고 손재주도 남다르니 가르치는 일도 잘할 걸세. 가족 경제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 저번에 학교에 보낸 책상하고 의자 말일세. 아주 특이하고 편안하다고 소문이 났더구만. 나도 오래전 목수였다네.”
“어르신도 참, 제가 나가서 가게 차릴 형편이 아니에요.”
“나가다니? 그럴 필요 없네. 바로 여기가 교실자리로 안성맞춤일세.”
할아버지와 우리 집 마당에 천막 지붕을 올리고 작업대를 놓았다. 살구나무에 ‘유별난 목공 교실’ 이라는 나무 간판을 만들어 걸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방과 후 재능교실이 열리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물론이고 동네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낮에는 동네 아주머니들도 모여서 나무 필통이나 작은 강아지 집을 만들었다. 가구 주문이 늘어나 바빠지자 쉬는 동네 아저씨들도 일손을 거두고 몫을 챙겨갔다.
‘유별난 목공교실’ 잔치가 열리는 날 많은 동네사람들이 와 주었다.
“우리 마을에 이런 특별한 젊은이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동안 어디 갔다 오셨는지요?”
사회자가 된 아저씨의 소개에 사람들이 와아!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아이돌 가수들처럼 휴대용 마이크를 턱에 붙이고 노래하듯이 신 나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제 이름이 유별난입니다.”
다시 한 번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기꺼이 마당을 내 준 할아버지에게 감사 인사 올립니다. 저의 애정과 열정으로 여러분의 숨은 재능을 찾도록 돕겠습니다. 나머지는 여러분 몫입니다. 끊임없이 갈고 닦고 문지르면서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만 나만의 걸작이 탄생하거든요. 저와 여러분은 멋진 한 팀입니다.”
교복 입은 중학교 오빠들이 휘리리익 휘파람을 불었다. 동네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힘껏 박수를 쳤다.
살구나무 아래 이웃들이 차려놓은 밥상은 푸짐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살구꽃이 사람들 머리에 내려앉았다.
“어머, 꽃 다 지겠네. 살구가 주렁주렁 열려야 나눠먹고 살구 잼도 만드는데.”
벌써부터 들뜬 엄마 목소리가 유쾌했다.
‘유별난 목공 집’ 나무 간판이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거렸다.
[출처] <2015 5.18문학상 수상작_동화, 심사평>|작성자 오월지기
<동화 심사평>
주먹밥 공동체와 증여정신
김진경, 한정기
문화인류학에 기원을 두고 있는 증여론에서는 재화를 신성재, 가치재, 교환재로 나눈다. 신성재는 예컨대 헌법, 인권, 신용 등과 같이 그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신성성을 갖는 재화로서 제3자에게 이전이 불가능한 재화이다. 가치재는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처럼 신성재의 복사로서 새로운 친족관계 집단이나 그에 준하는 집단에 증여는 할 수 있지만 교환은 할 수 없는 재화이다. 교환재는 시장에서 상품교환을 하는 재화이다. 어떤 공동체든 신성재와 관련한 증여정신이 죽으면 그 사회는 무너진다. 예컨대 선비정신은 조선조를 오백년 동안 유지시킨 증여정신이었고 그것이 무너지면서 조선은 멸망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주먹밥 공동체는 근래 우리 앞에 가시화된 우리사회의 살아있는 증여정신이다. 이 주먹밥 공동체의 증여정신은 경제 사회적 위기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무리 자본주의 화폐경제라 해도 신성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화폐경제 자체가 무너진다. 경제에서 국가의 신용이라는 것도 일종의 신성재이다. 오늘날의 신용화폐제도는 국가의 신용 한도 안에서 화폐를 발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국가의 신용 정도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탐욕적 양적 완화는 갈수록 생활생태계를 고갈시키고 자본주의 화폐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주먹밥 공동체의 증여정신을 이어받아 지역의 증여적 경제를 되살리고 그를 통해 고갈된 생활생태계를 되살려내는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 심사위원은 <유별난 목공 집>이 위와 같은 증여정신, 증여적 경제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주목하였다.
<유별난 목공 집>은 지방에서 친구와 함께 가구점을 차려 돈을 벌어오겠다며 가족을 떠난 아빠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역의 소규모 자본까지 다 빨아들이는 거대자본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사라져버린 지역공동체를 되살리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유별난 목공 집>은 지금 이 시대가 처한 상황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 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문학작품의 기본이 되는 탄탄한 구성과 끝까지 아이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간 점도 다른 작품과 차별성을 갖추고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억지스럽지 않은 전개 등이 응모자의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주고 있어 믿음이 갔다.
해거리 하는 과일나무처럼 응모작도 해거리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견줘 올해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응모작이 서사의 기본구조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아쉬웠다. 5.18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몇 편 있었지만 예년의 그만저만한 구성에서 벗어나는,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아이수 아이수>, <좁쌀영감과 오래된 자전거>, <정글짐으로 놀러오세요>, <유별난 목공 집>, <503호 열차> 등이었는데 <유별난 목공 집>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쉽게 일치를 보았다. 탈락한 응모자들에게는 더 분발하라는 응원을 보내며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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