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 고....♡/사 춘 기 세 상

고교 3년생 90% “수학 포기”

moon향 2014. 10. 7. 09:07

 

한 주를 여는 생각


매스매틱스(Mathematics) 1 티머시 가워스, 준 배로 그린, 임레 리더 등 쓰고 엮음, 금종해·정경훈 등 옮김/승산
수학자들 마이클 아티야, 알랭 콘, 세드릭 빌라니, 김민형 등 지음, 권지현 옮김/궁리
살아 있는 정리 세드릭 빌라니 지음, 이세진·임선희 옮김/해나무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이광연 지음/한국문학사
어서 오세요! 수학가게입니다 무카이 쇼고 지음, 고향옥 옮김/탐(토토북)

수학은 무엇인가? 왜 해야 하나? 수학이란 본디 어렵고 딱딱한 학문인가? 수학자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수학에 대한 이런 의문들을 새삼 환기시키고 수학 및 수학자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교육 수준을 한 차원 높인다는 세계수학자대회의 서울 개최(13~21일)에 맞춰 수학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회 개막식에 수여하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 티머시 가워스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 세계 일급 수학자 135명이 편저자로 참여하고, 한국 고등과학원의 수학박사 26명을 비롯한 30명의 국내 수학 두뇌들이 번역해낸 대작 <매스매틱스>. 고교 졸업자 눈높이 수준을 표방하면서 수학의 본질, 기본 개념, 역사적 배경, 현대수학의 다양한 첨단분야 주제별 해설, 수학자들의 삶과 생각 등을 종합적으로 담은 이 책은 드문 기획으로 꼽힌다.

세계적 수학자 54명의 수학과 수학에 관한 에세이와 사진을 함께 엮은 <수학자들>, 필즈상 수상자로 이번 서울 수학자대회에서 행사 진행을 맡은 세드릭 빌라니가 자신에게 필즈상을 안겨준 연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를 공개한 <살아 있는 정리>도 나왔다. 수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이광연 한서대 교수의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수학 대중화의 소설 버전인 일본인 수학 영재 무카이 쇼고의 청소년 소설 <어서 오세요! 수학가게입니다> 등도 관심을 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수학은 활짝 열린 자유의 공간이다.” 모름지기 수학자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방식대로 용기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는 필즈상 수상자 알랭 콘이 복잡한 수식 앞에 서 있다. 궁리 제공

우리나라에 필즈상 수상자 하나 없는 이유는

세계 일급 수학자들은 수학이 활짝 열린 자유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용 수학교육은 그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 수학 관련 세계대회를 잇따라 치렀지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하나 못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제27차 세계수학자대회(ICM, 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서울대회에는 100여 국가에서 5000여명의 수학자들이 참석한다. 이들 중 개도국 수학자 1000여명을 비롯해 2700여명이 외국 수학자이다. 대회 하이라이트 중의 하나가 13일 개막 때의 필즈상 시상식인데, 한국 수학자가 시상대에 올라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노벨상보다 더 받기 어렵다는 필즈상은 뛰어난 연구업적을 쌓은 40살 이하의 젊은 수학연구자들 2~4명에게 준다.

캐나다인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제창으로 1936년에 제정된 필즈상을 받은 동아시아인은 일본인 3명, 미국·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중국계 2명,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베트남인 1명이다. 잇따른 대회 개최가 한국 수학계의 괄목할 만한 발전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하나 남북한 모두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

<매스매틱스>(승산 펴냄, 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 2008)의 135명이나 되는 편저자 중엔 필즈상 수상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2002년 이 책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집필·편집을 지휘한 티머시 가워스(65) 케임브리지대 교수, 마이클 아티야(85) 에든버러대 교수, 알랭 콘(67)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 연구원이자 밴더빌트대 교수가 그렇다. 세계수학자대회 주최자인 세계수학자연맹(IMU) 회장 잉그리드 도비시(60) 듀크대 석좌교수도 들어 있다.

뉴욕시립대에서 쌍곡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영주 고등과학원(KIAS) 연구교수는 우수한 편저자들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이면서 “책임 편집자가 티머시 가워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책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2년 세계수학교육자대회 조직위원장을 지낸 신현용 한국교원대 교수 역시 집필자들이 “초일급 학자들”인데다 “고등과학원이 거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고 할 수 있는 번역진도 전원 수학박사급의 최고 전문가들”이라며 그 점을 높이 샀다.

수학에 반항하라
절대적 권위란 없다
수학은 활짝 열린 자유의 공간이다
규칙을 지키며 공간을 발견하면 된다

1시간 안에 수십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능은 수학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
대입을 위해 진도를 나가는
이런 수학 때문에 학생들이 불행하다

총 1700여쪽으로 구성된 <매스매틱스>는 모두 8개부로 구성돼 있는데, 이번에 먼저 출간된 1100여쪽의 제1권은 ‘수학─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가?’라는 타이틀로 시작한다. 수학 정리와 미해결 문제들, 수학자와 수학자적 삶,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쓴 타 분야에 끼친 수학의 영향 등을 담을 제2권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김영주 연구교수는 “수학의 기본 개념과 용어들, 현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수학의 각 분야가 발전해온 모습들과 계기들, 수학자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아이디어들을 꼼꼼히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다”면서, 이 책의 또다른 장점으로 “학부생이나 대학원생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쉽게 읽기 시작할 수 있는 눈높이로 시작한다”는 점, “생물학, 경제, 음악, 미술 등에 수학이 다양하게 응용된 것들을 방대한 참조문헌들을 세세히 대응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가워스는 “너무도 많은 수학 논문들이 발표돼 어느 한 개인도 수학의 아주 작은 부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지금 시대엔 <매스매틱스>가 더욱 유용할 수 있다고 했다.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한국문학사 펴냄)를 쓴 이광연 교수에 따르면, 전세계 수학자가 약 10만이며, 해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수학정리가 30만개를 넘고 연간 200만쪽 이상의 새로운 수학이론이 만들어진다.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에서 만난 세계 첨단 수학 두뇌들의 일상과 생각을 사진과 함께 담은 <수학자들>(궁리 펴냄)에서 알랭 콘은 말했다. “내가 보기에 수학자가 되는 것은 반항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수학자의 자질을 가진 사람은 어떤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책에서 읽은 내용이 그 문제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주관적 관점과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 게다가 그것을 계기로 수학에는 절대적 권위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열두 살배기 학생도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 보일 수만 있다면 선생님과 동등해질 수 있다. 학생이 갖추지 못한 지식을 선생이 방패삼을 수 없다는 점에서 수학은 다른 학문과 다르다. (…) 수학은 활짝 열린 자유의 공간이다. 규칙을 잘 지키면서 그 공간을 발견할 줄 알기만 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스스로 권위자가 되는 것이다.”

3명의 한국 수학자들을 포함한 54명의 <수학자들> 속 수학 천재들 대다수의 생각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수학교육 현실은 어떤가?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교수는 말했다. “대입 수능이다. 1시간 안에 수십 문제, 그것도 객관식 문제를 한 문제당 평균 2분씩의 시간 안에 풀어야 하는 수능 수학문제는 수학의 본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대학 교육의 가부를 가리는 일이 실수 한 번이면 끝장나버리는 이런 방식을 빨리 손봐야 한다. 학생이나 선생이나 대입을 위해 의무적으로 진도를 나가야 하는 이런 수학을 학생들은 너무나 싫어한다. 당연한 일이다. 수학 때문에 학생들이 너무 불행하다. 고교 3년생의 90%가 수학을 포기하는 현실, 수학 때문에 자신의 진로를 그렇게 정할 수밖에 없는 많은 실업계 학생들의 만연한 루저(패배자) 의식을 그대로 둬선 안 된다. 주관식에 문제수를 몇 개로 줄이고 수험시간도 더 줘야 한다. 평가의 공정성 문제, 그리고 비용 문제를 걱정하겠지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면 해결할 수 있다.”

수학자들은 음악과 독서(언어)가 수학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한국 대입 수능 교육은 그런 생각과도 거리가 너무 멀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