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눈 비 봄 길 섬

귀로 듣는 눈 - 문성해

moon향 2014. 12. 29. 08:59

 

 

 

 

 

귀로 듣는

 

 

 

             - 문성해

 

 

눈이 온다

시장 좌판 위 오래된 천막처럼 축 내려 앉은 하늘

허드레 눈이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온다

쳐내도 쳐내도 달려드는 무리들에 섞여

질긴 몸뚱이 하나 혀처럼 옷에 달라붙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진다

그것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이 흥건하다

행인 하나 쿵, 하고 미끄러진다

일어선 그가 다시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간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진다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이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다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만 그것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시커멓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그리워해야 하나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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