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 백 석 & 형 도

나리 나리 개나리 - 기형도

moon향 2015. 3. 14. 20:58

 

 

 

나리 나리 개나리

 

 

                             - 기형도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고......

'詩 詩 詩.....♡ > 백 석 & 형 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방에서 - 백석  (0) 2015.04.06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백석  (0) 2015.03.23
밤눈 - 기형도  (0) 2014.11.27
가는 비 온다 - 기형도  (0) 2014.11.25
10월 - 기형도  (0) 2014.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