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예쁜 여자가
- 기혁
한 남자를 부르는 동안
잘못 튼 샤워기처럼 무심했던 여자가
하늘을 본다
비가 내린다, 한다
매일 아침 목욕물을 받으며
한 남자와 나눠 가질 빗소리와
피워 올린 무지개를 떠올리던 여자가
내렸던 비를 맞는다
검게 변한다, 한다
케이크 조각의 각도만큼
한낮이 빠져나간 자리엔
수만 번 휘저은 감정의 거품들이
치즈 크림처럼 굳어 가는
여자의
구름
소나기가 내리면
구름은 기타가 되고
한 남자는 목소리를 잃고
다리부터 허리까지,
오랜 기우제를 지낸 여자의 목젖이
먼저 젖는다
점점 더 묽어지는 여자의 시간이
이 빠진 그릇처럼 풍만해지면
깨진 이빨을 간직한 한 남자의 저녁도
동화처럼 포개진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여우와 호랑이를 앞세우던 그 비가 다시
내린다, 한다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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