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사 랑 그 리 고

나처럼 예쁜 여자가 - 기혁

moon향 2014. 12. 1. 13:24

 

 

나처럼 예쁜 여자가

 

 

              -

 

 

한 남자를 부르는 동안

잘못 튼 샤워기처럼 무심했던 여자가

 

하늘을 본다

비가 내린다, 한다

 

매일 아침 목욕물을 받으며

한 남자와 나눠 가질 빗소리와

피워 올린 무지개를 떠올리던 여자가

 

내렸던 비를 맞는다

검게 변한다, 한다

 

케이크 조각의 각도만큼

한낮이 빠져나간 자리엔

수만 번 휘저은 감정의 거품들이

치즈 크림처럼 굳어 가는

여자의

구름

 

소나기가 내리면

구름은 기타가 되고

한 남자는 목소리를 잃고

다리부터 허리까지,

오랜 기우제를 지낸 여자의 목젖이

먼저 젖는다

 

점점 더 묽어지는 여자의 시간이

이 빠진 그릇처럼 풍만해지면

깨진 이빨을 간직한 한 남자의 저녁도

동화처럼 포개진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여우와 호랑이를 앞세우던 그 비가 다시

내린다, 한다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