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리 고....♡/문 화 계 소 식

마종기와 루시드 폴

moon향 2015. 5. 4. 11:30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 한희철 목사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도래샘>이라 이름을 정했는데,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이라는 뜻을 가진 우리말입니다.

먼저 우리말에 대해 공부를 하고, 동양 고전 한 토막을 읽고, 동요 한 곡을 부른 뒤 독서토론을 합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점을 서로 이야기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메마른 마음에 샘물이 닿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달 읽었던 책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입니다.

시인이자 의사인 마종기 씨와 음악 활동을 하는 생명공학도 루시드 폴 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지요.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하던 루시드 폴이 시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삶의 자리가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땅 미국과 유럽이라는 것,

늘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이따금 고국을 찾는다는 것, 의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상관없이

시와 음악을 또 하나의 길로 삼고 있다는 것 등의 공통점이 36살의 나이 차이를 훌쩍 뛰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격려하는 관계로 자연스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그렇게 시작이 되는 마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이라는 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입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우화의 강’을 마치 흘러가는 강물처럼 외워 들려주던 한 지인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결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이국땅의 연구실에서 겪어야 했던 진한 외로움을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으며 견뎌냈다는 한 젊은이의 고백은 이내 공감이 되었습니다.

 
<논어>에서는 ‘말할 만한 사람과 말을 하지 않음은 사람을 잃음이요, 말할 만하지 않은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음이라’ 이르고 있습니다.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이를 ‘지음’(知音)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더없이 편리해진 방법으로 소식을 주고받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만남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지만 ‘지음’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 그럴수록 누군가를 만나 물길을 트고 함께 흘러가는 것은 드문 은총이겠지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마침내 강이 될 수 있다는 시인의 노래가 우리의 메마른 삶에도 물길 하나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