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라는 말 - 권상진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닿아있었다
흉물스런 바닥의 상징들로 각인된 팔과 이마는
오늘, 또 하나의 슬픈 계급을 얻는다
삶의 바닥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있다
하루의 인생을 허탕치고 돌아와
단단하고 냉랭한 바닥에 무릎을 주고 손을 짚으면
이런 슬픔에 어울리는 습기와 냄새 그리고
허공의 무게가 뒷등에서 자라곤 했다
심해의 물고기들처럼 납작해질 용기가 없다면
중력을 향해 솟구쳐야 한다
마른 땅을 움켜쥐고도 몇 번을 다시 살아내는 나무처럼
시든 무릎을 세우면서
사람의 가장 슬픈 자세를 풀고 있는
나도, 이제 바닥이라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
달력은 벽에서 전등은 천정에서 화분은 베란다에서
저마다의 자세로 각자의 바닥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절망은
단단한 계단의 다른 이름이 된다
「청암문학」201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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