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의 시위 - 김완수
반디의 아스라한 시위가 궁금했다
다 켜지 못한 불을 꽁무니에 붙이고
구경꾼도 야경꾼도 없이 시위하는 걸 보고서
짠한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여름밤의 이슬 같은 몸짓이라
그보다 뭔가 고결한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처음엔 저를 청정으로 내모는 결벽인 줄 알았으나
반디가 제 의식(意識)에서 불면하는 건
서툰 자의가 아니었다
대낮의 쇳소리가 총성같이 울리고
소리의 여백이 산그늘보다 넓을 때
반디는 제가 뿌리내린 숙면에서 깨
의식의 게토로 이주했다
사람의 퇴거 명령이 탈바꿈을 재촉하자
반디는 목소리를 키웠다
세상 이목에서 사라질 줄 알아도
날로 산란(産卵)하는 인적은 버틸 수 없었겠지
야박하게 반디들 간을 내먹던 차윤(車胤)*은
일찌감치 그 목소리를 읽었을지 모른다
외면의 우범지대에서
내게 황달 같은 불을 켠 반디
내 발그레한 시선에 촛농이 떨어지는데
하루살이들의 가열(苛烈)한 시위를 보면서도
손사래로 눈 가릴 수 있을까
이제는 두메 끝 벼랑으로 날아가
촛불을 살리는 반디
반디의 꺼지지 않는 의식이 궁금하다
*차윤 : 가난하여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혀짤배기 사관(史觀) - 김완수
내 혀는 왜곡된 사관(史觀)을 가졌다
내가 오래된 진실을 떠올릴수록
혀는 거짓되게 짧은 소리를 냈다
한때 혀가 소리를 더듬던 것은
오래된 일을 잊으려는 연습이었을지 모른다
혓소리는 내 생각보다 일관되니
불분명한 발음을 탓하진 않을 테다
고집스러운 혀의 사관
내가 ‘드르륵드르륵’ 총 갈기는 소리를 떠올리면
혀는 ‘드드득드드득’ 이 가는 소리를 냈고
내가 ‘사랑’이란 말을 믿으면
혀는 엉뚱하게 ‘사당’이라 말했다
혀가 이치에 닿지 않을 때
나는 불필요한 제스처가 늘었다
삐딱한 혀의 사관
혀의 편향된 자세로
내 의사소통이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혀끝까지 생각을 전해
스스로 진실을 쭉 빼게 할 것이다
혀가 날렵해진다
이젠 말짱한 발음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혀가 명쾌하게 조음점(調音點)*에 닿는 순간
진실의 혀에선 꽃향내가 날 것이다
마른 입속에 침이 고이니
입바른 소리로 또 다른 진실과 입맞춤할 테다
달콤하고 끈적한 키스
서로의 입속에
진실의 혀가 들락거리는
*조음점 : 자음의 조음 위치와 관련된 기관 가운데 조음체(혀)가 접근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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