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반디의 시위, 혀짤배기사관의 노래 - 김완수

moon향 2014. 5. 18. 14:30

반디의 시위 - 김완수

 

반디의 아스라한 시위가 궁금했다

다 켜지 못한 불을 꽁무니에 붙이고

구경꾼도 야경꾼도 없이 시위하는 걸 보고서

짠한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여름밤의 이슬 같은 몸짓이라

그보다 뭔가 고결한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처음엔 저를 청정으로 내모는 결벽인 줄 알았으나

반디가 제 의식(意識)에서 불면하는 건

서툰 자의가 아니었다

대낮의 쇳소리가 총성같이 울리고

소리의 여백이 산그늘보다 넓을 때

반디는 제가 뿌리내린 숙면에서 깨

의식의 게토로 이주했다

 

사람의 퇴거 명령이 탈바꿈을 재촉하자

반디는 목소리를 키웠다

세상 이목에서 사라질 줄 알아도

날로 산란(産卵)하는 인적은 버틸 수 없었겠지

야박하게 반디들 간을 내먹던 차윤(車胤)*

일찌감치 그 목소리를 읽었을지 모른다

외면의 우범지대에서

내게 황달 같은 불을 켠 반디

내 발그레한 시선에 촛농이 떨어지는데

하루살이들의 가열(苛烈)한 시위를 보면서도

손사래로 눈 가릴 수 있을까

이제는 두메 끝 벼랑으로 날아가

촛불을 살리는 반디

반디의 꺼지지 않는 의식이 궁금하다

 

 

*차윤 : 가난하여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혀짤배기 사관(史觀) - 김완수

 

 

 

내 혀는 왜곡된 사관(史觀)을 가졌다

내가 오래된 진실을 떠올릴수록

혀는 거짓되게 짧은 소리를 냈다

한때 혀가 소리를 더듬던 것은

오래된 일을 잊으려는 연습이었을지 모른다

혓소리는 내 생각보다 일관되니

불분명한 발음을 탓하진 않을 테다

고집스러운 혀의 사관

내가 드르륵드르륵총 갈기는 소리를 떠올리면

혀는 드드득드드득이 가는 소리를 냈고

내가 사랑이란 말을 믿으면

혀는 엉뚱하게 사당이라 말했다

혀가 이치에 닿지 않을 때

나는 불필요한 제스처가 늘었다

삐딱한 혀의 사관

혀의 편향된 자세로

내 의사소통이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혀끝까지 생각을 전해

스스로 진실을 쭉 빼게 할 것이다

혀가 날렵해진다

이젠 말짱한 발음으로 진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혀가 명쾌하게 조음점(調音點)*에 닿는 순간

진실의 혀에선 꽃향내가 날 것이다

마른 입속에 침이 고이니

입바른 소리로 또 다른 진실과 입맞춤할 테다

달콤하고 끈적한 키스

서로의 입속에

진실의 혀가 들락거리는

 

 

 

*조음점 : 자음의 조음 위치와 관련된 기관 가운데 조음체()가 접근하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