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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대의 별/ 양성우

moon향 2014. 12. 1. 13:32

 

 

그대의 별/ 양성우

 

오늘따라 저 별은 왜 유난히

빛나는가?

그대의 별.

젊은 날 고스란히 세상을 위하여

몸 던지고,

때로는 숲에 숨고 땅 밑으로

천리를 오가던 사람.

그대가 맨손으로 어둠을 이겼으니,

그대의 큰 이름 아래서는

집 밖에 누워도 두렵지 않고

다 같이 가난함도 결코

가난이 아니구나.

아름다운 이여, 떠나가지 마라.

그대의 눈부신 저 별빛,

한 세월 깊이 파인 모든 가슴에

물처럼 가득히 넘칠 때까지는

 

- 시집『첫 마음』(실천문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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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한국작가회의 창립 4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에서 있었다. 시청 다목적홀 행사장 입구에서 받아든 한 장짜리 유인물에는 간략한 프로그램과 함께 ‘문학과 희망의 백년대계’란 슬로건을 내건 <젊은 문학선언>이 7포인트 사이즈 깨알글씨로 빼곡 채워져 있었다. 그야말로 시력 1.5 이상의 젊은 문인이거나 요량 있게 돋보기를 준비한 성실한 회원이 아니고서는 난독조차 불가한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의 선언문이었다. 먹물깨나 먹었거나 아니거나 다 같이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임을 알아챌 따름이었다.

 

 더구나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젊은 문학 선언’낭독은 “지금 문학은 자본과 욕망의 거대한 괴물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은 지난 100년 동안 그 사소함과 무기력함으로 한국 사회에서 역사의 그 많은 그 실패들을 기억해왔고, 기록해왔고, 질문해왔다. 불가능보다 더 불가능한 꿈꾸기를 통해, 절망보다 더 절망으로, 문학은 우리 세계를 불가능한 세계 쪽으로 힘겹게 끌고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에게 미래의 전망은 없다. 우리에게는 미래를 위한, 미래에 대한 우환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미래를 향해 흐르는 물처럼 전진한다.”

 

 ‘선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40년사의 주역 가운데 한분인 황석영 작가가 참석자 소개조차 받지 못한 채 컴컴한 객석에 앉아 있다가 막판 슬그머니 일어나 퇴장해버렸다. 젊은 작가 김근, 김경주, 진은영이 대표 집필한 '선언'은 모던한 미학적 문장으로는 쳐줄지 몰라도, 솔직히 지나치게 난삽하고 낭만적이며 수사 과잉이어서 40년 전 그날의 선언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40년 이후를 기약하는 다짐으로 과연 온당한 지향일지 모르겠고, 장황하고 지루한 일방적인 퍼포먼스라는 느낌만 가득했다. 심지어 문단 내부에서조차 지적 우월감의 '갑질'로 비쳐질 우려마저 들었다.

 

 이날의 행사는 살아있는 문학정신을 실천한 40년 전의 그날과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문학인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함께 모색하며 결의하는 자리여야했다. 그러나 그때와 비교해볼 때 세상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또 여전한지, 문학인들은 어떤 시대의식과 소명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오늘의 선언과 그때의 선언 사이를 어떤 정신이 관통하고 있는지, 이 정권에 분명한 목소리로 전할 요구사항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74년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엄혹했던 한해였다. 새해 벽두를 대통령 긴급조치 1호로 으스스하게 시작한 그해에는 민청학련, 인혁당 재건, 문인간첩단 사건 등 굵직한 정치공작과 각종 시국사건들로 점철되었다.

 

 한국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74년 11월 18일 광화문 네거리 종각 앞에서 고은, 이호철, 백낙청, 염무웅, 조태일, 이문구, 황석영, 박태순, 양성우, 최민, 조해일, 조선작, 송영, 이시영, 송기원, 윤흥길, 임정남, 신경림(사전참여) 등 문인 20여 명이 모여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첫 깃발을 들었다. 이날 발표한 ‘문학인 101인 선언’은 이 나라 민주화 운동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었으며,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문인들의 조직적인 결기였다. 이때 표방하고 지향했던 구호가 ‘민족, 민중, 민주’였다.

 

 이틀 만에 101명의 서명을 받아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작성한 ‘문학인 101인 선언문’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은 살기 어렵고 거짓과 아첨에 능한 사람은 살기 편하게 되어 있으며 왜곡된 근대화 정책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하여 권력과 금력에서 소외된 대다수 민중들은 기초적인 생존마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정치가의 독단적인 결정에 맡겨질 일이 아니라 전국민적인 지혜와 용기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 믿고, 이에 우리 뜻있는 문학인 일동은 우리의 순수한 문학적 양심과 떳떳한 인간적 이성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결의, 선언하는 바이며 이러한 우리의 주장이 실현되는 것만이 국민총화와 민족안보에 이르는 길이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광주에서 상경한 양성우 시인이 하루 전 먹지를 대고 여러 벌 손으로 직접 복사해 뿌려진 이 선언문에는 당시 문학인들의 지극히 보편적인 요구가 무리없는 어투로 담겨있었다.

 

 신문들은 고은 시인이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자실’의 시국선언을 크게 보도하면서 1)김지하를 비롯한 긴급조치 구속 인사 석방 2)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 사상의 자유 보장 3)서민대중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 및 현행 노동관계법 개정 4)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의 마련 5)우리의 주장은 문학자적 순수성의 발로이며 어떠한 탄압 속에서도 계속될 진실한 외침이라는 5개항의 결의문도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이렇게 ‘자실’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고, ‘민작’을 거쳐 오늘날의 ‘한국작가회의’가 문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당국에 비교적 협조적인 ‘한국문인협회’와는 다른 위상의 진보적인 문학단체로 각인토록 했다.

 

 ‘자실’은 70년대 내내 김지하, 양성우 등 구속문인 석방 투쟁과 YH사건 등 시국 현안에 대한 성명을 통해 실천적인 문학운동의 중심축으로 나섰다. 그러나 ‘오적’의 김지하는 변절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쭉 빠져있고, ‘겨울공화국’의 양성우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는 그가 작시한 운동가요의 한 구절처럼 노무현과의 멱살잡이 후 2002년 대선에서 돌연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데 이어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도운 대가로 차관급 대우의 정부기관인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취임소감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민의 나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한 그의 포부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누구를 지지하거나 어디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이력을 왜곡하거나 공헌을 폄하할 수는 없다. 40년 작가회의 역사에서 그의 역할은 작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혹독한 고초를 겪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40주년 기념으로 출간한 ‘증언: 1970년대 문학운동’에 수록된 이승철 시인과의 대담 말미에 "1988년 재야인사 97명과 함께 평민당에 입당하여 그해 총선에 출마하게 되었고, 서울양천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낙선되어야 했는데..."란 말 줄임 대목에 이르러 씁쓸함과 함께 연민이 느껴졌다. 언젠가 “아직까지 우리 선거판은 기회주의자들에겐 기회의 땅”이라고 한 말도 생각났다.

 

 ‘너나없이 첫 마음을 변치 않을 일이다/ 짐작도 못하는 사이에 오는 것이/ 끝날이다/ 처음 만나던 때를 잊지 않는다면/ 마음이 마를 틈이 없을 것이다’ 그의 시집「첫 마음」의 표제시 ‘첫 마음’의 한 구절이다. 그가 의원 시절 영등포의 한 백화점 앞 도로변에서 주차위반 딱지를 뗐다고 해서 단속 의경에게 노발대발 고함지르고 뺨을 후려친 그 몹쓸 '갑질'의 기억에서 벗어나 다시 ‘첫 마음’으로 되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수많은 문인들이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살아 있는 정신의 표상으로 살다 갔고 또 살고 있다. ‘젊은 날 고스란히 세상을 위하여/ 몸 던지고,/ 때로는 숲에 숨고 땅 밑으로/ 천리를 오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암울한 어둠을 깨치는 ‘그대의 눈부신 저 별빛’이 되었다. 문학은 언제나 ‘을’의 위치에서 굴곡진 역사를 정직하게 기록했으며, 장차에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권순진

 

사노라면 - 전인권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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