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堅 夢遊桃源圖 [안견 몽유도원도] 비단에 수묵담채. 38.7 x 106.5 cm.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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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이 서른 살 되던 해(1447년)
어느 여름날 밤에 꿈속에서 노닐었던 도원을 안견이 그린 것이다.
그림과 함께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신숙주, 이개, 정인지, 박연, 박팽년, 김종서, 등
당대 최고 문사들의 모두 23편의 저마다의 자필 찬시가 곁들여 있어 그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편대군의 발문에 의하면 그림은 1447년 음력 4월 20일에 그리기 시작하여 3일 만인
23일 완성 되었다고 하며 그림의 내용은 통상적인 두루마리 그림과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쪽 상단부로 전개되어 있다.
왼쪽 도입부의 현실세계에서 출발하여 두루마리를 따라 오른쪽 도가(道家)의 이상경(理想景)인
도원(桃園)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이 구현되어 있다.
평원의 잔잔한 풍경에서 시작되는 도원을 향하는 길은
고원(高遠)의 험한 절벽과 강물을 힘들게 건너고 나면
심원(深遠)의 넓은 대지위에 펼쳐진 화사한 복숭아 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 그림에서의 도원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꿈결같은 몽롱한 분위기가 하면 전체에 녹아져 있어
그윽하면서도 신비스러우며 당대의 화풍이 거의 망라되어 있어 다양한 느낌과 분위기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맨 오른쪽이 도원경, 그리고 중간 부분이 현실세계에서 도원경으로 연결되는 험난한 기암괴석군,
그리고 맨 왼쪽이 현실세계로 나뉘어 볼 수 있다.
감상자에 따라 2부분 또는 4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나 그림을 세부분으로 나눴다.
먼저 오른쪽 도원경 부분인데 이 작품은 두루마리 그림이기에 펼치는 순간 가장 먼저 도원경이 눈에 들어 온다.
안평대군이 가장 보고 싶어 하던 부분인 도원경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부터 도원경으로 나가는 것이 정상이나 그림은 이러한 일반론을 뒤집고 오른쪽에 도원경을 그렸다.
< 오른쪽 도원경 부분 세부도 >
병풍처럼 기암고봉들이 도원을 감싸고 있고 특히 상단에서 보여주는 기암고봉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이곳이 신선들이 살고 있는 무릉도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점은 부감법을 이용해 공중에서 바라볼 때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넓게 조망하는 효과를 냈다.
특히 도원 중앙 아래의 암산 가운데 부분의 높이를 현저히 낮춰 도원의 면적을 크게 보이게 한 부분은
안견의 탁월한 능력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산과 바위로 둘러쌓인 중경의 넓직한 분지에는 복숭아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활짝 핀 복사꽃은 빨간 꽃잎으로 그려져 화사한 분위기가 나며 꽃술은 금색으로 반짝인다.
도원(桃園)의 오른쪽 대각선 끝자락에 아담한 집에 세 채가 있고
중간의 복사꽃 사이 물가에는 배가 매어져 있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자욱한 안개 속에 복사꽃만 화려하다.
여기가 바로 꿈속에서 그리던 이상향인 신선들이 사는 도원경이다.
안견은 기암괴석과 도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모습을 한 화면에 절묘하게 배치하여
도원경이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 중간 부분의 세부도 >
뭉게 구름처럼 보이는 황토산을 운두준법으로 그리고 산의 아랫쪽은 밝게 표현하여 조광효과를 내었다.
표면처리에 있어서 필선이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도록 붓을 서로 잇대어 그렸는데
이러한 산악 표현은 중국 송, 원대에 유행했던 이곽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곽파란 북송 초기의 이성(李成)이 완성시킨 북방계 산수화 양식과 거기에 또 다른 형식을 가미시킨 곽희(郭熙)의
산수화 양식을 계승시킨 화가들을 말하며 조선 초기 화단에 영향력이 컷던 화풍이다.
그림 가운데 부분은 안평대군이 도원을 찾아가면서 보았다던
'산 벼랑이 울퉁불퉁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길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 굽이로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한다.'
꿈 속의 바로 그 모습을 그렸다.
웅장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럽게 보이는 봉우리는 중첩되게 그려져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느낌을 주면서
형태의 천차만별로 산중의 험준함을 잘 표현했다.
현실세계와 도원의 사이는 기암절벽이 이중으로 가로막고 있다.
막막하게만 보이는 두 세계 사이에도 이들을 연결하는 길이 암시적으로 묘사되어 있음은
그만큼 도원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그림의 구도는 '이상향을 향한 역경의 행로' 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시내는 구비져있고, 길은 백번이나 꺾여나간듯한데 깎아지른듯
솟아오른 절벽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다 문득 시선을 낮추니 숲 가장자리의 두 갈래 오솔길이 보인다.
이 곳의 산들은 아까 현실세계의 산과 분명히 다르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듯한 기괴한 바위산의 풍경이 이미 현실에서 떠나 꿈속에 와 있음을 말해준다.
산길 우측의 흘러내리는 2단 폭포가 이 경계만 넘으면 바로 도원임을 알려주고 있다.
도원에 도착하기 전의 정경들이다.
원경으로는 희미한 기암고봉들이 감싸안을 듯 둘러져 있고 도원에 이르기전 목마른 갈증을 축이게 함인가.
중경에 이르러서는 높고 낮은 봉우리들 계곡에서는 맑은 물들이 2단의 폭포로 쏟아져 내린다.
폭포로 떨어져 내리는 물들을 전경의 낮으막한 험준한 산과 기암들이 막아 얇고 넓은 연못을 이루게 하고
연못 주변에 서있는 봉숭아 나무들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 화면의 왼쪽편인 무릉도원으로 가는 출발 지점 세부 부분도>
이 장면은 몽유도원도의 가장 왼쪽 부분이다.
왼쪽 아래에 대충 대충 간단하게 야산으로 그려놓은 이 광경은 현실세계를 묘사하고 있어.
그림의 구도가 마치 동네 산을 옆에서 보는듯 평면적이다.
'현실'이라고 해놓고는 현실답지 않게 흐릿하게 그려 이 그림에서 가장 신경쓰이지 않았던 부분이다.
중부지방 특유의 야산 모습에서 처럼 사실적이고 실경적인 요소를 가미해 그렸는데
다른 부분의 비실경적 모습과 대비되어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각 경물들은 분리된 듯 하면서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으며
특히 좌반부의 정면시각과 우반부의 부감법을 이용한 공간 처리,
평원과 고원의 대조, 사선운동의 활용을 통해 자연의 웅장함과 선경의 환상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실경적 요소와 환상적인 세계의 교묘한 구현 등에는 안견의 독자적인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산수화로 손꼽히는 작품임이 분명하다.
몽유도원도는 여러 기법의 표현 등에서 북송대의 화풍을 보이지만 이를 토대로 발전시킨
안견의 독창성이 잘 집약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향은 후대의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안평대군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 >
안평대군은 자신의 꿈과 안견의 그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작품의 제작 연유를 적은 장문의 제기를 손수 적은 것은 물론이고
큼지막한 제목글씨까지 멋들어지게 써서 첫머리에 붙혔다.
3년 후 어느 날 다시 옛 감회에 젖어 다음의 제시(題詩)를 지었다.
世間何處夢桃園 [세간하처몽도원] 이 세상 어느 곳이 꿈에 본 도원인가.
野服山冠尙宛然 [야복산관상완연] 시골사람 옷차림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著畵看來定好事 [저화간래정호사] 그림으로 그려 놓고 보니 참으로 좋구나
自多千載擬相傳 [자대천재의상전]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직하지 않은가.
後三年正月一夜 [후삼년정월일야] 삼년 뒤 정월 초하룻날 밤.
在致知亭因披閱有作 [재치지정인피열유작] 치지정에서 다시 펴보고 짓노라
淸之 [청지]
몽유도원도가 어떻게 일본으로 반출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기록으로 볼 때 최소한 1893년에는 일본에 있었기에 아마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강탈된 문화재란 증거가 없다보니 반환을 요구할 수도 없어 영원히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한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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