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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간즙출의 사학

moon향 2014. 4. 27. 18:54

 

 

[이규보의 심간즙출의 시학 5]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시의 잡풀을 제거해야

 

 

 

 

송강 정철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학자는 이규보입니다.

21세기 우리 문학과 미래를 꿰뚫기 위해서는 우리 고전문학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한문이 섞여 있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떨구고 찬찬히 읽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문학이 새싹을 틔울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 큰사랑을 기다립니다.

70살을 넘겨서도 시마(詩魔)에 시달리면서 자아와 세계에 심장과 간이 상하도록 온몸을 관통시켜 그 녹아내리는 즙으로 천년 뒤에도 미칠 시를 쓰고자 했던 동방의 규성(奎星) 이규보.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 중 <논시중미지약언>에서 논해진 ‘시유구불의체(시에는 마땅하지 않은 아홉 가지 체가 있다)’에 대해 소략하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논시중미지약언(論詩中微旨略言)>의 뜻은 ‘시의 중심에서 은밀하고 섬세하게 작동하는 깊고 오묘한 핵심을 논하는 간략한 말’이다. ‘미지(微旨)’의 사전적 의미는 깊고 오묘한 뜻이다. ‘미’는 작다, 어둡다, 은밀하다, 섬세하다, 비밀스럽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지’는 뜻, 아름답다, 마루(산이나 등성이의 높은 중심) 등의 의미를 지닌 문자이다. ‘시중미지’는 시라는 장르의 특성 가운데 작동하며 시인의 기(氣)와 예(藝)가 발현되어 생동하면서 시 장르 특성을 보존하면서 혁신해가는 오묘하고 섬세한 요소들의 총합과 그것 각자의 은밀한 구조적 핵심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규보의 <논시중미지약언> 중 ‘구불의체론(九不宜體論)’은 시를 창작하고 퇴고하는 데 피해야 할 아홉 가지 체(體)이다. 다시 말해 시에서 마땅하지 않은 아홉 가지 체가 구불의체이다[ 1.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2.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3. 만노불승체(挽弩不勝體)4.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5. 설갱도맹체(設坑導盲體)6. 강인종기체(强人從己體) 7. 촌부회담체(村夫會談體)8. 능범존귀체(凌犯尊貴體) 9. 낭유만전체(莨莠滿田體)].

이규보가 논한 ‘구불의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일찍이 소개된바, 나는 이 중에서 우선 ‘낭유만전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쓸모없는 잡풀들이 시어를 가득 덮었는데 이를 뽑거나 깎아내지 않은 것이 ‘낭유만전체’이다.(詞荒不刪 是莨莠滿田體也). - 이규보, ‘논시중미지약언’ 부분

사황(詞荒)’의 ‘사’는 노랫말로 시어를 뜻한다. ‘황’은 거칠다는 뜻이며 잡풀로 덮여있다는 뜻이다. 이어지는 다음 구절의 맥락을 따지면 ‘황’은 곡식 심은 밭을 가득 덮은, ‘곡식 같지만 곡식 아닌 강아지풀 즉 낭유’이다. 따라서 ‘사황’은 시어가 거칠다는 뜻만으로 해석될 수 없다. ‘사황’은 시의 참뜻을 해치는 불필요한 수식어, 시의 율동을 망치는 거친 시어, 본래의 의상(意象)을 가로막는 장식적 시어이다. 시를 쓰고 나서 잡초같이 쓸데없는 말들을 가리어 뽑고 깎기를 반복하지 않아 시의 참뜻과 아름다움은 가려진, 무성한 잡초처럼 비시적이거나 반미적인 말이 무질서하게 엉겨 있게 된 시가 ‘낭유만전체’이다.

시인의 심미적 의도는 좋았으나 쓸데없는 말들과 무질서한 말들에 그 의도가 가려져 작품이 의도에 미치지 못하거나 반하게 된 시의 골격과 풍격! ‘낭유’는 가라지풀이나 강아지풀로 번역되지만 곡식과 매우 흡사한 잡초이다. 오랜 농사의 경험으로 미립을 체득하지 못했다면 잡초인지 곡식인지 알아보기 힘든 풀이 바로 ‘낭유’이다. 이 ‘낭유’를 솎아내 시인의 심미적 의도를 작품의 실상으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그 시는 미국 신비평에서 말하는 의도론적 오류(intentional fallacy)에 빠진 졸작이라 할 것이다.

공자는 군자로 보이나 실상은 그 반대인, 교언영색에 능한 사이비-군자를 ‘낭유’에 비유했다. 그만큼 군자와 사이비-군자를 가려내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를 씀에 있어서 시의 참뜻에 해당하는 골력(骨力), 아름다움의 감성적 형상화에 해당하는 풍격(風格), 이 둘의 조화로운 구성과 표현에 해당하는 시어와 구절, 그를 가로막거나 그에 반하는 시어와 구절을 정확히 가려내 과감하게 솎아내기란 밭에 볍씨를 뿌리고 싹이 돋을 때 이 싹들이 곡식인지 강아지풀인지 가려내 솎아내기 어려운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규보는 시를 쓰고 나서 시의 결점에 해당하는 요소를 찾아내 고치기를 계속 반복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 과정의 오랜 숙련을 통해 미립이 체득되어야 참뜻의 기상이 생동하며 그 구성과 표현이 부합하여 함께 살아 움직이는 참되고 아름다운 시를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규보가 시 쓰는 후학들을 깨우쳐 주는 한편 자신의 시 쓰는 과정을 스스로 경계하고자 했던 ‘낭유만전체’의 의미이다.

곡식은 뽑아버리고 잡풀만 무성하게 된 농사처럼 적실하고 참된 심미적 시어와 구절은 삭제해 버리고 독자와 작가의 참뜻과 아름다움을 속이거나 가로막는 장식적인 시어와 구절을 강조하듯 늘어놓은 무질서한 시, 이런 시를 창작하게 되는 과정은 초보자뿐만 아니라 전문 시인도 종종 빠져 겪게 되는 것 역시 창작과 퇴고 과정의 ‘시중미지(詩中微旨, 시 창작과 퇴고 과정에 있는 은밀하고 오묘하고 깊으며 몹시 섬세하여 파악하기 어려운 요지)’를 체득하여 구현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따라서 시를 쓰고, 자신의 시를 스르로 비평하며, 미지(微旨)를 체득하는 한편 작품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각도에서 이규보는 “ 무릇 시가 이루어지면 반복해서 보아야 한다. 자기가 지은 것으로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이나 평생 미워하는 사람의 시로 보아 그 흠결과 실수를 찾아내듯 해야 한다. 그런 후에도 흠결이나 실수를 찾지 못하게 되어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퇴고를 강조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소월의‘진달래꽃’은 3년에 걸쳐 150번 이상 퇴고한 것이고,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와 같은 단시(短詩)를 완성하기 위해 서른여섯 번인가 퇴고를 했다고 한다. ‘낭유만전’의 반사적 의미의 계승이라 할 것이다.

탁월한 시인은 탁월한 비평가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창작한 작품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살펴 골력과 풍격을 조화롭게, 현미(顯微)의 감식안으로써 시의 미지(微旨)를 살려낼 수 있어야 탁월한 시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시인 이규배는 1964년 전북 익산군 여산에서 태어나 1988년 시 동인지 <80년대> 2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창작과비평> <한길문학> <사상문예운동> 등에 시를 발표했다. 시집으로 <투명한 슬픔> <비가를 위하여> <아픈 곳마다 꽃이 피고>가 있다. 일간문예뉴스 <문학iN> 기획주간 및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출처 : 활짝 웃는 독서회
글쓴이 : 강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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