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장필순 노래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 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에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널 위한 나의 기억이 이제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힘겨운 어제를 나를 지켜주던 너의 가슴
이렇게 내 맘이 서글퍼질 때면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11년 만입니다” 장필순, 여왕의 귀환
출처 레이디경향 | 입력 2013.09.30 11:54
“들리나요? 새벽을 깨우는 제주의 그 바람 소리가…”
거장이 돌아왔다. 가수 장필순이 11년 만에 7집 앨범을 냈다. 더욱이 조동익, 박용준, 이규호, 이종학 등 장필순이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드림팀이 다시 뭉쳤기에 그 의미가 크다. 오랜만의 만남. 지난 11년간 켜켜이 쌓아둔 궁금증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았는데, 그녀는 헝클어뜨리거나 잘라냄 없이 한 올 한 올 진심이 담긴 답을 주었다.
가녀린 몸매 탓인지, 약간은 무표정한 인상 탓인지 장필순(50)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첫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어딘지 불편해 보인다는 인상을 지울 순 없었다. 차 한 잔 권하기 전에 어디가 아픈 건지 물을 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한 감기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일찌감치 귀촌해 좋은 공기 마시고 사는 지인은 서울에 올 때마다 독가스실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며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늘 부랴부랴 시골로 내려가버리곤 했다. 혹 그녀도 서울이어서 아픈 걸까?
“주로 내려간 지 10년 됐는데 요즘처럼 이렇게 서울에 오래 머물렀던 적이 없어요. 서울에 오더라도 당일로 볼일만 보고 내려가는 식이었죠(웃음). 그런데 이번에 새 앨범 때문에 며칠씩 머무르다가 결국 이렇게 감기 몸살이 나고 말았네요.”
준비해온 따뜻한 차로 목을 축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는 장필순은 엷게 웃어 보였다. 아픈 사람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조금 아프다는 그 기색마저 그녀와 참 잘 어울리게 느껴졌다. 장필순의 열혈 팬들 중 몇몇으로부터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녀가 예쁘기까지 하니 더 좋다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 몇몇이 남자였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래도 웬일인지 '예쁜 장필순'의 느낌을 알 것 같았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는 참 부드럽고도 아름답고, 진실하면서 따뜻한 그 무엇(?)이었다. 가만히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장필순은 충분히 예뻤다. 그야말로 ‘느낌 아니까!’
“7집 반응이요? 저한텐 기대 이상이에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절 이렇게 기억해주시고 계시리라 생각도 못했어요. 음반 작업하면서… 욕심이지만, 그냥 오랜 세월이 지나서 나는 지워져도 음악은 남을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거든요.”
11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다시 만나게 된 팬들의 반응을 묻자, 그녀의 표정은 금세 환해졌다. 세상은 목이 빠져라 장필순의 음악을 기다렸는데, 정작 그녀는 세상을 잊고 지냈나 보다. 자신의 7집 발매 기사에 달렸던 '목이 빠져라 기다리다 목이 빠져버렸다'라는 어떤 팬의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소리 내 웃어 보였다. 탁한 서울 공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팬의 사랑인가 보다.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던 음악
그래도 11년은 너무 심했다. 기왕 이리 낼 것이었다면 말이다. 더욱이 '역시 장필순!'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번 7집 음반의 장필순 클래스는 여전했다. 반갑다 못해 화가 난다는 팬들의 반응도 십분 이해가 간다. 원래 미치게 좋아하면 그렇다. 그런데 왜 이리 늦은 것이었냐 묻는 질문에 돌아온 그녀의 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애초 제주도에 내려갈 때는, 어쩌면 다시는 음악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뭐… 은퇴다 뭐다, 단어로 정의 내릴 건 아니고요. 그냥 안 하면 되니까. 11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웃음). 정말 제주도 가서 6, 7년은 음악 생각 전혀 안 했어요. 조금은 한 발짝 떨어져 서 있는 것처럼 살았어요.”
장필순과 음악은 등호를 성립하는 하나의 완전한 등식이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음악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나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로 떠났던 2005년에 그녀는 무척 지쳐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세상 사람들은 거창한 계획이 있어 제주도로 떠나는 것처럼 바라봤지만 정작 그녀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고 했다. 다 접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장필순 6집 「Soony 6」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녀를 크게 좌절하게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장필순의 6집 음반은 대한민국 대중음악평론가가 뽑은 최고의 음반 순위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동시 1위를 차지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명반이다. 그런데 그런 6집 작업 후 정작 창작자는 실패로 인한 좌절을 맛보았다니. 이래서 예술은 잔인하다 하는가.
“서운하다기보다는 좌절감이 컸어요. 그래서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입어도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강아지 여섯 마리랑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텃밭 가꾸며 사는 일도 녹록치 않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어요. 시간은 느리지만, 일과는 바쁜 그런 생활이요.”
아예 안 할 생각으로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갔으면서, 7집 앨범 작업 이전에는 기타도 안 잡고 TV는커녕 라디오조차 없는 외딴 집에서 오롯이 세상과 분리돼 살았으면서 어떻게 또 새 앨범 작업을 하게 됐을까. 음악을 하지 않겠다는 살벌한 속내의 연유보다 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시간이 지나고… 음악 하는 친구들과 연을 끊지 않다 보니 이렇게 음악을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주위에서 많이 부추기기도 했고요. 못 이기는 척 그렇게요. 결정적인 계기는 함춘호 오빠랑 CCM 작업을 한 거였어요. 그 작업 하면서 다시 음악 하는 기쁨을 만끽했거든요.”
잊었던 음악 기억하게 한 함춘호
장필순은 가수이자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2009년에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라는 CCM 앨범을 냈다.
“예전부터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음악 그만두게 되면, 손 놓게 되면… 언젠가 한 번은 CCM을 할 거라고요. 오빠가 원래 그쪽 활동도 활발히 해오고 계시잖아요. 오빠가 그러대요. 나랑 하자, 지금 하자라고요. 음악 안 할 생각이었으니 해야 하는 거잖아요(웃음).”
또 막상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전부터 해오던 말이 있어 쉽게 "안 한다"라는 말도 할 수는 없었다고. 제주도에 꼭꼭 숨어 있던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오는 데 일조한 함춘호의 공을 일정 부분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머뭇거리던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공연이 있어 제주도에 올 때면, 꼭 시간을 내 그녀의 집을 찾았다. 할 거면 같이하자고, 지금 하자고, 나랑 하자고 설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함춘호와의 작업을 수락하면서 그녀는 제주도에 내려간 후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다. 근 5년 만의 일이다.
“기타도 다시 잡고, 앨범 작업 생각해 마당 일도 좀 살살하면서 몸과 마음을 준비했죠. 작곡도 하고, 앨범 안에 들어갈 것도 정리하면서요. 그거 할 때는 지금처럼 며칠씩 있을 여건이 못 돼서 하루 녹음하고 다시 제주도 갔다가, 다시 와서 하루 녹음하고 내려가고 했어요. 그렇게 이틀 만에 녹음을 다 했죠.”
종교 음악이라고는 하나 장필순과 함춘호가 만든 CCM 음반은 나름 조용한 성공을 거두었다. 더욱이 장필순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의 곡을 장필순이 직접 썼으며, 함춘호 역시 작곡에 참여하며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연주를 더했다. 특히 장필순 4집에 실렸던 전원적인 느낌의 '길'이 지극히 건조하고 도시적인 회한을 담은 곡으로 리메이크돼 팬들은 종교를 떠나 장필순 음악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 달래기도 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고 싶었어요. 그게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와 상관없어요. 그 음반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것도 사실 그게 목표였고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음악이요. 녹음실에서 모두 모여 합주하며 녹음하는데 예전 공연하던 기억도 나고 무척 재미있게 작업을 한 것이 저에겐 다시 음악을 하게 한 결정적인 어떤 것이 됐죠(웃음).”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장필순은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마음껏 연주하고, 노래를 한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것인가 보다. 공연하는 느낌마저 들어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CCM 앨범 작업을 무사히 마친 데서 끝나지 않은 데 있다. 그 여세를 몰아 7집 작업을 하자며 동료,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성화를 부리며 일어선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장필순은 그렇게 다시 음악 작업의 기지개를 켜게 됐다.
이미 전설이라 불리는 7집
‘11년 만에 컴백한 장필순의 7집 앨범’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사실 족하다. 성과에 대한 평가를 잠시 뒤로 미뤄놓아도 말이다. '기대 이상'이라는 말은 예의 차원에서라도 잠시 넣어두자. '여전하다'라는 말로도 충분히 그 감동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작업의 90% 이상이 제주에서 이루어졌어요. 요즘은 예전처럼 녹음실에 모여 합주 안 하잖아요. 각자 편한 시간에 드럼은 드럼대로, 기타는 기타대로 따로 해서 합치지. 바뀐 시스템 덕을 많이 봤죠. 잘 이용했어요. 예전 같은 방식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일명 홈 레코딩(Home Recording) 방식이다. 요즘은 대개 이런 방식을 통해 음반 작업을 한다. 물론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홈 레코딩이라 해도 스튜디오 녹음실을 방불케 하는 장비를 갖추어놓으니 일반인들처럼 컴퓨터 한 대와 마이크만 있을 것이라 연상하면 오산이다. 장필순은 7집을 작업하면서 "신기한 것 다 경험해보았다"라고 했다. 이런 작업 방식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주변에서 부추겼다 했을지라도 서울을 오가며 녹음을 하지는 못했을 거라면서.
“TV도 라디오도 없는 생활을 했거든요. 컴퓨터도 겨우 인터넷으로 강아지와 고양이 사료나 주문하는 정도의 실력이고요. 사실상 컴맹인 거죠(웃음). 그런 제가 서울 스튜디오와 제주 집을 인터넷 화상통화로 연결해서 작업했다니까요. 이야, 이렇게도 녹음이 가능하구나 감탄하면서요.”
제주에서 만들어진 음악이어서 그럴까. 사람들은 이번 7집 곡들을 들으며 제주의 바람을 느낀다고 한다. 제주라는 제목 하나 붙은 곡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변함없는 장필순의 음악 안에서 또 조금은 완전히 변한 것 같은 새로움이 앨범 안에 가득하다. 장필순은 말한다. 제주의 삶이 어떻게 음악 안에 녹아들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스며들어가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유희열은 이번 장필순의 음반을 '약국에서 판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농을 섞은 감상평을 내놓았다. 너무 진부해 사용하고 싶지 않은 힐링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면서 말이다. 그만큼 편안하다는 뜻이리라. 일반 팬들의 평도 유희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전의 음악이 해 질 무렵 같다면, 이번 음반은 해가 뜨는 것 같은 새벽과 아침을 연상하게 한다.
선명한 멜로디에 록의 감성을 이어가 7집에서 만나는 장필순의 음악은 그야말로 신선하다. 1번 트랙부터 9번 트랙 마지막 곡까지 ‘드림팀’이 뭉쳐 만든 곡의 웅장함이 대단하다. 낮잠과 자연의 소리를 소박하게 그린 곡 ‘맴맴’은 허스키한 장필순의 음색을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조동진이나 장필순 음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라면 ‘빛바랜 시간 거슬러’가 반가울 것이다. 특히 6번 트랙의 ‘1동 303호’라는 곡이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고 있는 모양이다. 이 음반의 백미라고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마지막 앨범이 가장 좋은 법
장필순의 이번 7집을 위해 내로라하는 음악인들이 모두 모였다. 전체적인 사운드와 흐름은 역시 장필순의 음악 동반자인 조동익이 맡았다. 장필순과 함께 '하나음악'에 몸담았던 이규호, 고찬용, 박용준 등 소위 레전드급 뮤지션들이 직접 제주를 오가며 제작에 참여했다. 함춘호는 레코딩뿐 아니라 공연장 어디서나 그녀와 함께하며 빈틈없고 다양한 톤의 연주를 선보였다. 이번 7집은 장필순뿐 아니라 그들 모두의 음악적 족적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기념비적 음반인 셈이다.
우문인 줄 알고 물었다. 7장의 솔로 앨범 중 어떤 앨범이 가장 애정이 가느냐고. 그러자 줄줄이 쉴 줄 모르고 답을 한다. 1집은 첫 앨범이고, 운 좋게도 1집 곡들이 많이 알려져 가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됐고, 음악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가장 기억에 남고, 애정이 간다고 했다. 또 2집은 소속사는 있었지만 철저히 혼자 작업한 곡들이라 고생을 많이 해 기억에 남고, 애정이 간다고 했다. 3집은 조동익과 처음 작업을 해서, 4집은 직접 제작을 해본 거라, 5집과 6집은 하나음악이 문 열고 만든 첫 번째 음반이고, 문 닫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음반이라 기억에 남고 애정이 간다고 했다. 우문인 줄 알았다.
“음악 하는 어떤 친구가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음악 하는 사람은 순간의 열정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앨범에 애정을 가진다고. 가장 최선을 다한 것이라 생각도 하고요. 그 말을 빌려 답을 대신할게요. 저 역시 이번 7집이 마지막 앨범이라 가장 애정이 가요. 마지막이 제일 좋아요(웃음).”
가장 애정이 가는 음반 이야기를 하던 장필순은 이번 작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제대로 답을 해줄 수 있다며 웃었다. 그것은 바로 과거를 함께했고, 현재를 함께하고 있으며, 미래를 함께할 동료 선후배들의 도움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던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음악 작업뿐 아니라 앨범 발매 후 모든 스케줄 관리부터 홍보에 마케팅까지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그러면서도 아주 흔쾌히 나선 장필순의 오랜 지인들이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요, 쉬운 길 같아도 나서면 먼 길이에요. 그런데 다들 서울 일 접고 내려와줬어요. 모두 스케줄이 있는데 말이죠. 녹음할 때 모두 평균 20일에서 한 달은 내려와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고마움이에요. 7집을 떠올리면 그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잊지 못할 일이죠.”
완전히 바뀐 음악 환경. 그러나 그녀는 그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그 장점만을 최대한 활용했다. 혹자는 홈 레코딩의 소리가 다소 거칠다고 우려하지만 그녀는 개인적으로 음악 욕심 부리기엔 적당하다며 일축했다.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끝까지 찾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설명 끝에는 “물론 대충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하면서 웃는다.
이웃집 효리가 궁금해요?
사실 장필순과의 인터뷰 전 소속사 관계자와 스케줄을 조정하면서 당부에 가까운 부탁의 말을 들었다. 되도록 가수 이효리에 대한 질문이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장필순과 이효리. 공통점 하나 찾아보려 해도 찾아지지 않는 뜬금없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효리 이야기 속에는 꼭 장필순이 등장했고, 장필순 소식 안에는 이효리가 들어 있었다. 세간의 떠도는 말들을 들어보면 이효리가 장필순의 팬이라는 것부터 시작해 음악적 뮤즈라고 하고, 지금은 부부가 된 이효리·이상순의 만남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장필순이 꽤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혹자는 장필순이 중매를 한 셈이라는 말까지 한다. 말들이야 많지만 그중에서 하나는 확실하다. 이효리가 제주도에 집을 짓고 살 계획을 가진 데는 장필순의 영향이 크다는 것!
“아니에요. 괜찮아요. 효리씨 얘기해도 돼요. 효리씨가 원해서 먼저 오픈한 거니까. 내가 싫다고 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저도 별로 아는 건 없어서… 답해줄 만한 게 있을까 모르겠어요(웃음).”
자연스럽게 이제는 이웃이 된 이효리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정말 최측근만 참석했다는 그 비공개 결혼식에는 갔느냐 물으니 “당연히 갔다”라고 했다. 초대도 초대지만 10분 거리의 이웃집이라 가지 않을 수야 없는 것 아니냐며 되레 웃는다. 결혼식에 가보니 정말 가까운 사람만 몇몇 모였더란다. 장필순도 꽤 놀란 눈치였다. 잠깐 들러 10분 정도 있다 바로 와서 더는 해줄 얘기가 없다고 했다. 사실 이효리 얘기는 기자들에게 받는 질문 중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말끝에 나왔다. 오랜만에 인터뷰하는 거라 싫은 질문은 없는데, 많이 묻는 질문은 있다면서 말이다.
“앨범 질문이 가장 많고, 제주도 생활도 많이 묻고 그 다음이 효리씨예요(웃음). 이렇게 인터뷰 자리에서 묻는 거야 괜찮아요. 그런데 동네로 찾아오시는 건 좀 힘들더라고요. 정말 어떤 때는 진을 치고 계세요. 그 기자분들도 위에서 보내서 온 거겠죠?”
한번은 장필순이 사는 동네에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 힘들어 보여 “식사는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어떤 여기자 한 명이 그때서야 “요즘 선생님 근황은 어떠세요?” 하고 묻더란다. 미안해서 그랬던가 보다, 라면서 장필순은 웃었다. 어쨌든 동네 이웃이 됐으니 자의 반 타의 반 장필순은 이효리와 계속 엮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공통점 하나 없어 보이는 그녀들이지만 제법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닮은 것 같다는 것이다. 지켜만 보아도 즐거운 인연이 또 시작됐다. 좋은 일이다.
제주에 산다는 것
인터뷰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종종 기침을 하는 장필순이 걱정됐다. 그러나 정작 아픈 그녀는 천천히 하란다. 그래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겠지만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제주도 생활에 대해 물었다. 보통날의 하루 일과부터.
“눈 뜨면 7시쯤 돼요. 5시쯤 깰 때도 있지만 무엇을 하진 않아요. 여름엔 5시만 돼도 환하고, 겨울은 7시는 돼야 동이 터요. 저는 서쪽에 살아서 동쪽에서 해가 떠 한라산을 넘으면 우리 집에 뜨죠. 커피 한 잔 마시고, 마당에 나가 꽃밭이랑 텃밭 한 번 둘러보고요. 텃밭이요, 한 번 맛을 들이면 그 재미가 대단해요.”
텃밭 이야기가 나오자 장필순의 눈이 반짝인다. 해마다 다르긴 한데 지금은 가지, 고추, 깻잎, 파프리카, 토마토 등등을 키운다며 끝없이 온갖 채소의 이름들을 나열한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많이 심어놓는 것이 있다. 바로 허브다. 바질부터 로즈메리, 레몬밤까지 키운다. 그녀의 집을 찾은 지인들은 허브 가져가기 바쁘단다. 그래서 더 많이 키워놓는다. 아름답긴 하지만, 그래도 제주도는 섬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 안에서도 외따로 떨어져 산다. 어떤 때 가장 섬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지 궁금했다.
“글쎄요. 제가 사는 곳은 바닷가도 아니고 산속이라 그리 섬을 체감하지 못해요. 다만 가끔 걱정되는 건 부모님이요. 서울에 사시는데 갑자기 아프시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제주도는 날씨 때문에 발이 묶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요. 가야 하는데 못 갈 수 있잖아요. 문득 그런 생각할 때 내가 섬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죠.”
소금기 머금은 바람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겨울이면 손이 노래지도록 먹게 되는 감귤을 말할 줄 알았다. 그래서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건만 부모님에 대한 걱정의 마음을 보여줄 줄이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장필순이 먼저 분위기를 바꿔준다. 아침에 텃밭에 나가 상추며 고추며 푸성귀 뜯어다 아침 먹을 때, 이웃이 대문 앞에 몰래 놓고 간 감귤 한 박스를 발견했을 때, 태풍이 불어 마당 나무가 뽑혀나가도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집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때 제주에 있음을 느낀다면서. 여섯 마리의 개들과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한라산 서쪽 자락에 살고 있는 장필순은 제주도 사람이 다 돼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새 앨범에서도 제주의 바람이 느껴졌나 보다. 그곳에 가고 싶게 만들어버리는 설레고 또 설레게 하는 그 바람 말이다. 다시 음악을 듣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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