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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라바카란의 죽음과 내전의 끝_스리랑카, 다시 꾸는 꿈

moon향 2012. 5. 7. 08:34

 

 

 

 

 

인도 남부의 작은 섬, 실론(Ceylon)티의 나라 스리랑카(SriLaka)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로 26년 간 계속되었던 내전이 지난 5월 18일 공식적으로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23일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스리랑카의 평화정착을 기원했다. 인도양의 진주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나라 스리랑카. 그러나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내전으로 역사에 남은 비운의 섬이기도 한 그 곳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내전의 불씨를 키운 443년 동안의 식민통치

 

 

스리랑카 전국 지도

 

스리랑카는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으로부터 443년 동안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그 중 영국의 통치는 앞으로 펼쳐질 스리랑카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는 바로 실론(Celyon)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인들은 실론이라 알려진 스리랑카의 오묘한 차(tea) 맛에 매료되었지만, 실론의 비싼 가격으로 인해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팔아 만든 자본으로 스리랑카에 대규모 차농장을 건설한다. 그러나 당시 스리랑카의 토착주민이었던 싱할레족이 영국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인도본토로부터 타밀족을 대거 강제 이주시켰다. 이로서 불교를 믿던 단일민족 스리랑카가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과 다민족 사회를 이루게 된 것이다. 또한 싱할레족에 비해 소수민족이었던 타밀족은 영국과의 협조 하에 특권을 누리며 스리랑카 사회 기득권층으로 부상하게 된다. 당연히 싱할레족은 타밀족의 번성을 달갑게 보지 않았고, 두 민족 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8년 스리랑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권을 얻게 되고, 그 동안 영국의 통치 하에 애써 통제되었던 두 민족 간의 갈등은 내전으로 폭발하게 된다. 

 

 

 

 

10만 명의 사상자를 낸 26년 간의 내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26년 간의 스리랑카 내전은 UN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약 10만 명의 사상자와 민간인 학살, 소년병, 인권 유린 등의 사회 문제를 낳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스리랑카를 이런 비극으로 치닫게 했을까? 

 

 

                 행군 중인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전선(LTTE)'                                           스리랑카 정부군

  

 

1948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스리랑카의 싱할리족들은 싱할리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고, 소수 힌두교도인 타밀족에 대한 여러가지 차별정책을 펼쳤다. 특히 타밀족에서 고학력 고급인력을 계속 배출하자 싱할리족 정치인들은 대표적인 차별정책 중의 하나인 '인구비례 대학 입학제'를 만들었다. 계속되는 차별 정책으로 타밀족의 분노는 폭발하고, 결국 1983년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 무장전선(LTTE)'이라는 무장반군단체를 중심으로 내전을 일으키게 된다. 내전은 휴전 개전을 반복하며 오랫 동안 지속되었다.  26년의 분쟁 기간 동안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족과의 화해를 위해 나름의 융화책을 펼치지만, 역사와 언어 그리고 종교가 다른 두 민족이 하나가 될 순 없었다. 이런 갈등을 종결하기 위해 2005년 11월 스리랑카 대통령에 당선된 라자팍세 대통령은 2006년 타밀족과의 분쟁을 '대태러전쟁'으로 규정하고, 정부군을 중심으로 타밀족에 총공세를 펼쳤다. 이에 맞서 타밀족은 10만 명의 민간인을 감금해 '인간방패'식 항쟁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 

 

 

(1) 1991년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 테러 공격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

 

 

1991년 라지브 간디 전 총리는 프라바카란이 이끄는 LTTE의 폭탄테러에 의해 암살당한다. 암살의 원인은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가 평소 인도 평화유지군 파견에 불만을 갖고 있던 LTTE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LTTE가 최초로 시도한 자살 폭탄 테러는 후에 알카에다 등 현재 무장테러집단의 폭탄테러의 원조가 된다.

 

처음 암살이 일어났을 때 인도정부는 다누 외에도 많은 이들이 사건에 연루됐다고 보고했으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고 재판이 진행될 쯤에는 이미 여러 명이 죽은 뒤라 그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재판에 회부된 26명 중 4명이 사형 확정되고, 이들은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 민간인들의 생사를 건 대탈출

 

 

 

스리랑카의 민간인 피해자들

 

타밀반군(LTTE)은 정부군에 대한 최후의 항쟁으로 약 10만명의 민간인들을 장악 지역에 감금, 소위 '인간방패'식의 항전을 벌여왔다. 이에 총 공세를 펼치던 정부군도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국제 사회의 여론을 고려하여 몇 달간 공격을 늦추었으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당했음이 밝혀졌다.

 

결국 타밀반군에 의해 갇혀있던 민간인 8만 명은 생사를 건 탈출을 시도했고, 이에 정부군 역시 막바지 공세에 열을 올리면서 스리랑카 내전 종료가 이뤄질 수 있었다.

 

 

  

정글 속의 반군 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타밀족의 최고 반군 사령관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

 

 

'자유의 투사', '자살폭탄테러의 원조', '타밀해방의 목소리' 등으로 불리며 지난 40년 간 스리랑카 반군 세력인 LTTE를 이끌어 온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வேலுப்பிள்ளை பிரபாகரன், 1945년 11월 26일~2009년 5월 18일)이 지난 5월 18일 정부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가다 사살당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공식 확인되면서, 26년 간 계속됐던 스리랑카 내전이 마침내 공식 종결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이 26년 간 지리하게 계속되었던 내전을 종식시킨다는 것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스리랑카 내전에서 프라바카란의 존재는 곧 내전의 시작과 끝을 의미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은 1954년 중산층 힌두교 가정의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내성적이었던 그는 틈만 나면 책과 영화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라바카란은 성장하면서 싱할리족에 의해 시행된 여러 차별정책에 분개하고, 결국 18세 때 무장투쟁에 뛰어들어 1975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라는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정글로 들어간다.

 

그가 이끌었던 LTTE는 단순한 반군 조직 세력이 아니었다. 육해공 부대를 갖추고 심지어 스리랑카 영토의 3분의 1을 지배할 만큼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리고 1991년 라지브 간디(Gandhi) 전 인도총리를 암살하였을 때 그가 발명한 '자살조끼'는 현재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있는 자살폭탄테러의 원조가 된다. 그러나 그는 LTTE에 소년병과 민간인을 이용하는 등의 폐해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실제로 그는 테러배후조종 혐의로 인터폴의 적색 수배자 명단에 올라 궐석재판에서 200년의 징영혁을 선고받은 바가 있다.

 

21세에 정글에 들어간 후 37년 간 무장투쟁을 벌이다 결국 주검이 되어 다시 세상으로 나온 프라바카란은 여전히 타밀족에겐 '타밀해방의 희망'으로 싱할리족에겐 '모든 악의 근원'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 다시 꾸는 꿈

 

내전은 끝났다. 스리랑카는 다시 한번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섣불리 판단하기엔 아직 해결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남아있다. 우선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스리랑카정부는내전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이 학살에 관한 규명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비록 LTTE가 해체되었다고 하지만, 두 민족 간의 근본적인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 한 스리랑카에 진정한 평화가 뿌리내리긴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26년 간 지속되었던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그 몇배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이번 내전 종식이 결국엔 스리랑카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첫 발걸음이 되기를 기원한다. 

 

 

 

* 참고문헌: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 이삼열(외)지음

 

 

- 외교통상부 블로그 1기 대학생 기자 이혜민  

(ms.hyeminlee@gmail.com)

 

 

 

 

 

 

출처 : I ♡ mofat
글쓴이 : 외교나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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