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ung Soo Kim, Eric Merchie, 김명수 부모님을 찾습니다!
멸치를 먹을 때마다 기도해달라고 하시는 Mercie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출생은 한국인데, 성장은 벨기에에서 그리고 사역은 루마니아에서 하고 계십니다.
광주은광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진 선교사님의 설교방송을 보고 귀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김명수 선교사님은 1966년 서울태생이지만 사연을 모른 채 어느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1971년 벨기에 부부 Raymond와 Fernande에게 입양되었습니다.
벨기에에서도 선교사님은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에서 자라서인지 영어 표현이 독특하십니다.
양어머님 종교가 카톨릭이라 십대 때는 성당을 다녔으나,
고등학교 단짝 친구를 통해 개신교의 복음을 듣게 되어 20세 때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대학 청년부를 섬기던 중에 네팔에서 오신 한 선교사님의 설교에 감동받아 비전을 품게 되어 루마니아에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1993년부터 루마니아 YFC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루마니아는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라틴계 공화국이며,
루마니아계 인구가 거의 90%가 될 정도로 민족의 순수성이 한국과 많이 닮았는데,
개신교는 약 5% 정도밖에 안된다네요.
웹사이트 www.myungsoo.ro에 들어가서 My Testimony를 클릭해보면, 김명수 선교사님의 글이 보입니다.
My life stated in Korea, without anything. I was alone, I had nothing.
No parents, no love from a mother or a father, no brother nor sister to play with.
( 어떤 것도 없이, 나의 인생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혼자였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고,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도, 함께 놀 형제 자매도 없었다. )
어느 누가 자기 인생의 시작을 이렇게 간결한 슬픔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단지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표현 이외에 “고아”라고 하는 단어는 어느 곳에서도 쓰여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고아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그만큼 김선교사님께서는 무엇보다도 가족을 찾기 위한,
아니 가족을 꼭 찾을 수 있으리라는 의지로 이 날까지 버텨오셨을테니까요.
단지 이 세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이 터져나왔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부모님과 함께 살아왔잖아요?
저 또한 엄마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해주신 밥과 함께 따스한 애정을 먹고 자랐고,
학생시절 너무나 엄격했던 아빠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아빠에게 농담도 쉽게 건넬 만큼 어른이 되었고,
결혼하여 아들이랑 딸까지 둔 어머니의 자리에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나의 자식들에게 똑같이 해주는 자리에 서있는데,
게다가 아직도 부모님 댁에 가고 싶을 때면 언제나 갈 수 있는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겠습니까?
저는 부모님 두 분이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께서는 김명수 선교사님께 친부모를 대신할 만큼
자애로운 수양가정과 훌륭한 크리스천 이웃들을 주시고,
선교사님을 복음으로 이끌었던 최고의 친구 Eric Zander를 주셨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 친구인데, 자신이 친구의 교회를 따라가지 않았어도
6년 동안이나 복음을 끈기 있게 나누었다고 합니다.
100번의 초대 이후 크리스마스에야 비로소 친구 교회에 따라가고,
그로부터 1년 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고 하는데요....
요즘처럼 복음 전하기 어려운 때에, 이 선교사님의 절친인 벨기에 청년 Eric Zander를 많이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김명수 선교사님의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For I know the thoughts that I think toward you, saith the LORD, thoughts of peace, and not of evil,
to give you an expected end.
- < Jeremiah 29 : 11 >
선교사님의 웹사이트 곳곳에 예레미야 말씀이 보이기 때문이죠.
I had no family and God has given me two families :
a wonderful Belgian adopted family and other Christian family.
In my Christian family I have brothers and sisters who have encouraged me to know and love God,
my Eternal Father, and to serve Him as a missionary.
( 나는 가족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두 가정 : 멋진 벨기에 수양가정과 다른 크리스천 가정을 주셨다.
나의 크리스천 가족 중에는, 내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그리고 선교사로서
우리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격려해준 형제 자매들이 있다. )
선교사님의 글을 계속 읽다 보니
어쩌면 하나님께서 1970년대 초반에 가난한 한국땅의 어느 고아원의 어린 꼬마에게
복음의 평안이 있는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고 벨기에로 입양 보내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유년시절에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영화에서 “아득한 바다 저 멀리~”로 시작하는 주제가가 떠오르네요.
김선교사님은 그 동안 친부모님의 소식을 알기 위해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셨습니다.
이번엔 8주 정도 계시면서 부산, 포항, 서울, 광주, 여수에서 후원교회들과 중보기도 가족들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유년기를 보냈던 예전의 고아원은 건물이 새롭게 증축된 관계로, 자신의 첫 번째 집이 변한 모습에 슬프지만......
한국음식은 모두 맛있답니다.
김선교사님 겉모습은 한국인이면서도 외국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한국어를 못해서 속상하지만,
자신의 위장이야말로 신실한 한국인임을 증명해주나 봅니다! (^^)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해보세요!
요즘처럼 사건 사고가 많은 심란한 세상에 어느 교수님은 매일 아침 모든 가족이 아침밥상에 모인다고 합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모두 돌아오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민감하게 말씀하셨는데요.
아마도 교통사고 같은 일로 사망하기도 하고 또 후천적 장애가 누구에게나 올 수도 있는 세상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영생을 품고 있는 우리는 가족간의 헤어짐이 두렵지 않지만,
“있을 때 잘하자!”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한국출신 루마니아 선교사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족관계의 정을 아로새겨 봅니다.
www.myungsoo.ro에서 김명수 Mercie 선교사님 소식을 만나보세요! 멸치 드실 때 꼭 중보기도해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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