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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The Eagles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글스의 그 팝송

moon향 2012. 4. 12. 12:09

 

 

 

“호텔 캘리포니아, 우주정거장과 리비아 감옥서도 듣는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이글스의 그 팝송

 

 

 

 

한국에서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 1976년 발표)’는 이글스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 아바의 ‘댄싱 퀸(Dancing Queen)’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팝송으로 꼽힌다. 특히 옛 LP 음반을 틀어주는 카페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는 늘 압도적인 ‘신청곡 1위’ 자리를 지킨다.

상당히 염세적인 가사인데도 감미로운 멜로디 때문인지, 아니면 ‘캘리포니아’란 지명이 이국적 낭만을 전해주기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여행 갈 때’ 혹은 ‘연인과 함께’ 듣는 팝송으로 늘 이 곡을 선택했다. 특히 기타 듀엣은 이 곡의 백미다. 한때 기타 좀 쳤다는 사람 치고, 이 연주를 따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곡은 모든 ‘기타 키드(Guitar Kid)’의 로망이었다.

 

그런 곡이 나온 지 35년 만인 올해, 한국 팬들은 3월 공연을 통해 이글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게 됐다. 이글스 멤버들은 올해 모두 솔로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올해는 이글스 데뷔 40주년이다. 그들은 “우리 음악 인생을 기념하는 음반이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기념할 만한 음반을 만든다는 말이, 이제 음악 인생의 정리 단계로 들어간다는 말로 들렸다.

● 당신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의 사람들이 ‘호텔 캘리포니아’를 수십 년간 최고의 노래로 여기며 많은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돈 헨리=
“영광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 안에서 비행사가 ‘호텔 캘리포니아’를 기상곡으로 틀어놓은 걸 본 적이 있어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온두라스의 산골 오지에서 어떤 청년이 건전지를 넣은 카세트로 이 곡을 듣고 있더군요. 그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You! Hotel California’라고 해서 더 놀랐죠.”

글렌 프라이=“저는 리비아의 감옥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모습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해요.”

돈 헨리=“29세에 이 곡을 썼을 땐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돈은 인터뷰 때 데님 소재의 카키색 셔츠,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47년생인 그는 멤버 중 가장 젊어 보였다. 짧게 자른 금발, 깊은 눈, 흰 얼굴, 잘 다듬어진 수염. 약간 배 나온 티가 났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호텔 캘리포니아’의 리드 보컬이었다. 돈은 드럼을 치며 이 곡을 부른다.

● ‘드럼을 치는 리드 보컬’을 신선하게 받아들인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돈 헨리:
“우리 모두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모두가 보컬이죠. 다만 그 곡의 뼈대를 만든 멤버가 대개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나는 드러머니까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른 것뿐이고요.”

 

 

1970년대 초반 이글스 멤버는 다섯 명이었다. 왼쪽부터 랜디 마이스너(Randy Meisner), 글렌 프라이,

조 월시, 돈 헨리, 돈 펠더(Don Felder). Getty Images/멀티비츠

 

● ‘호텔 캘리포니아’엔 하드록의 요소가 많이 포함돼 있죠. 하지만 무엇 하나로 규정하긴 힘든 곡이기도 합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받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글렌 프라이=
“곡을 만드는 건 양탄자(rug)를 짜는 것과 같아요. 이 곡을 만들 때 돈과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요소들을 섞고 싶어 했죠. 레게뿐만 아니라 로큰롤과 멕시코·스페인·라틴 음악 등을 섞어 재미있고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려고요. 아마도 그런 노력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 아닌가 싶어요.”

● 기타 듀엣은 이 곡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죠. 그 부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조 월시=
“그건 일종의 대화입니다. 아니, 경쟁입니다. 마치 싸우듯, 저돌적인 에너지를 담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겁니다. ‘내가 저 녀석보다 잘 쳐야지’라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하하하. 정말 그랬죠. (웃다가 다시 진지하게) 우리는 서로 다르게 연주하려고 했고, 서로 더 잘 연주하려고 했어요. 많은 연습을 했죠.

경쟁적인 연주가 어느 순간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각의 솔로 부분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짜였고요. ‘흥미로운 다름(interesting difference)’이 만들어 낸 결과였습니다.”

● 그 노래는 구설수에 여러 번 올랐죠. 가사 내용이 사교(邪敎)집단이나 정신병원부터 사탄, 퇴색한 아메리칸 드림을 뜻한다는 말이 무성했었죠.

글렌 프라이=
“곡을 만들 당시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지 홀로 사막을 운전하고, 적막한 호텔에 가서 익숙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등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만 있었을 뿐이죠. 비틀스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즈(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처럼 팬들이 함께 상상하며 그리길 원했을 뿐,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틀스의 그 노래도 마약 ‘LSD(곡의 첫 글자를 따서)’를 뜻한다는 어이없는 말도 돌지 않았습니까. 우리 노래에도 여러 억측이 있었죠.”

돈 헨리=“우리가 이 곡에서 말하고자 했던 캘리포니아는 꿈보다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통해 만들어진 캘리포니아와 미국에 대한 환상 말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반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미국은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순 없었죠.”

돈은 이 대목에서 현실 정치로 이야기를 옮겨왔다. 그는 “지금은 기회조차 박탈됐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미국에서 기회가 사라졌다는 건 무엇을 말합니까.

돈 헨리=
“2008년 경제위기 이후로 캘리포니아는 파산했죠. 우리는 할리우드 스타를 주지사로 뽑았어요.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는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어쨌거나, 미국은 지금 어려운 시기(tough time)를 보내고 있어요.”

● 민주당을 지지하는군요.

돈 헨리=
“맞습니다.”

● 지금 말한 부분들도 기사화될 수 있습니다.

돈 헨리=
“그럼요. 얼마든지요.”

컨트리 음악을 해온 이글스에 대해 많은 이들, 특히 미국 이외 지역에 사는 이들은 ‘백인 문화를 대표하는 그룹’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게다가 ‘이글(독수리)’은 미국을 상징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 이글스는 미국의 보수적 문화를 대변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어떤 평론가는 “백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온 이글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뒤 변화된 미국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멜버른=강인식 기자

 

 

(왼쪽부터 사진 설명) 사진=Sam Jones

 

 

돈 헨리 Don Henley 보컬·드럼 64세, 미국 텍사스주 길머 출신

노스 텍사스 주립대 중퇴, 영화 ‘007 문레이커’의 여배우 로이스 칠스와 교제, 95년 텍사스 출신 모델 샤론 서머롤과 결혼, 90년 ‘미국 월든숲 보호 단체(Walden Woods Project)’ 설립 등 왕성한 사회 활동

글렌 프라이 Glenn Frey 보컬·기타 63세,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태생

고교 때 작가 잭 케루악(비트 문화 상징)과 제임스 딘에 심취, 80년대 인기 범죄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에 초청 출연, 90년대 후반에 자신의 음반회사 ‘미션 레코드’를 변호사와 공동 설립

조 월시 Joe Walsh 보컬·기타 64세, 캔자스주 위치타 출생

제임스갱·반스톰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다 75년 이글스 합류, 아마추어 무선사로 활발한 활동(호출부호: WB6ACU), 80년 미국 대선 때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기름을 무상 제공한다는 공약 등 제시

티머시 슈밋 Timothy B. Schmit 보컬·베이스 64세,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출신

어릴 때 음악가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트레일러 생활, 새크라멘토 주립 단과대학 심리학과 중퇴, 70년대 그룹 포코(Poco)에서 베이스 주자로 활동하다 77년 이글스 합류, 팬들과 따뜻한 교분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

 


활공과 추락, 재기의 휴먼 스토리
앨범으로 본 이글스 연대기
일회용 급조 밴드로 출발하다


때론 ‘작은 인연’이 인생의 물줄기를 바꾼다. 1971년 봄, 유명 여가수 린다 론스태드는 연주자를 물색하다 돈 헨리(드럼)와 글렌 프라이(기타)를 영입했다. 얼마 뒤 랜디 마이스너(베이스)와 버니 리든(기타)도 합류했다. 원래 그들은 일회용이었다. 7월 디즈니랜드에서 열린 론스태드 공연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질…. 그러나 4인조는 환상의 궁합을 뽐냈다. 론스태드가 “밴드를 만들어 보라”고 격려했다. 멤버들도 의기투합했다.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적 향수를 자극하다

이글스(Eagles, 1972)

영국에서 녹음한 데뷔 앨범은 대박이었다. 미국 빌보드 차트의 ‘톱 40’에 3곡이 올랐다. 타이틀 곡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는 원래 글렌의 이웃에 살던 동료 음악가 잭슨 브라운이 쓴 곡이었다. 애리조나주 윈슬로와 66번 국도변의 멋진 풍광, 그러나 신설 고속도로에 밀려 잊혀지는 향수적 정취를 경쾌한 컨트리풍 노래로 그려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이 곡으로 독수리는 단숨에 비상(飛翔) 날개를 달았다.

재기발랄 자신감

데스페라도(Desperado, 1973)


성공은 자신감과 상상력을 키운다. 두 번째 앨범은 서부 활극을 테마로 삼아 멤버들과 록스타들의 삶을 재치 있게 노래했다. 앞 표지엔 카우보이 복장의 멤버 4인이, 뒷면엔 멤버를 포함한 6명이 총에 맞아 죽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앨범 전체적으로 1890년대 말의 전설적 무법자 ‘둘린 달튼’ 스토리를 담아냈다. 돈과 글렌이 음반 제작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밴드 리더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변화를 시도하다

온 더 보더(On the border, 1974)


돈과 글렌은 새로운 걸 원했다. 컨트리 음악에서 벗어나 하드록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이었다. 돈 펠더라는 기타리스트가 다섯 번째 멤버로 끼었다. 독수리 5형제가 된 것이다. 이 앨범에선 ‘베스트 오브 마이 러브(Best of My Love)’가 75년 3월 빌보드 싱글 1위를 차지했다. 74년 캘리포니아의 ‘잼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땐 20만 관객의 운집 속에서 블랙 사바스, 딥퍼플 같은 시대의 아이콘 밴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j 칵테일 >> 1회 공연 수입 ‘레이디 가가’보다 많아

713억원 이글스가 최근 1년간 공연으로 번 수입
세계 가수 중 7위 기록
1위 본 조비(록 가수) 1684억원
10위 폴 매카트니(전 비틀스 멤버) 640억원


인터뷰 전날 밤 이글스의 공연을 봤다. 멜버른에서만 나흘째 공연이었지만 1만4000여 관중석은 매진이었다. 미국 음악 차트 ‘빌보드’가 집계한 2009년 11월~지난해 11월 1년간 세계의 ‘톱 25 공연’ 순위에 따르면 이글스는 6200만 달러(약 713억원)를 넘게 벌어 7위에 올랐다. 그러나 공연당 수입을 따지면 3위권으로 올라간다. 4위에 오른 레이디 가가(1억1600만 달러)의 경우 122회 공연을 했지만, 60대 멤버로 구성된 이글스는 40차례만 무대에 섰다. 레이디 가가는 공연 1회당 95만 달러 남짓, 이글스는 155만 달러를 벌었다. 공연 기획사에 따르면 이글스는 요즘 잘나가는 마룬5, 제이슨 므라즈의 두 배가 넘는 개런티를 받는다. 공연의 횟수를 놓고 봤을 때 이글스를 확실히 앞선다고 할 수 있는 가수는 아일랜드 그룹 U2 정도다.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보다 많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을 보유한 이글스(히트곡 모음, Their Greatest Hits 1971~1975, 2900만 장)의 저력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2900만 장 이글스의 ‘히트곡 모음 앨범’ 미국 판매량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앨범(2800만 장)을
능가하는 역대 1위 기록


공연 직전 기자는 초대 손님 자격으로 무대를 둘러볼 수 있었다. 멤버당 20~30대의 기타가 순서대로 무대 뒤에 진열돼 있었다. 각 곡마다 표현하려는 것이 다르고, 그에 따라 악기의 종류가 다르고, 준비의 정도가 다르다. 그를 위해 멤버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수십 대의 악기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수십 년간 같은 곡을 연주해온 그들이지만, 이날도 공연 3시간 전에 나와 모든 곡의 연주 준비 여부를 점검했다. 리허설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악기를 포함해 그들의 무대에 사용되는 장비는 모두 38t. 컨테이너를 나르는 대형 트럭이 13대나 동원된다. 순회공연 스태프는 75명, 현지 스태프는 60명.

5개 이글스의 빌보드 싱글 1위 곡
Best Of My Love (75년 3월)
One Of These Nights (75년 6월)
New Kid In Town (77년 2월)
Hotel California (77년 5월)
Heartache Tonight (79년 11월)


무대 한편 스피커 위엔 ‘박하사탕’이 두 개씩 놓여 있었다. 살아 있는 전설들은 그 사탕으로 목을 달래며 3시간 이상 노래를 이어갔다.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아이 캔트 텔 유 와이(I can’t tell you why)‘를 거쳐 앙코르 곡 ‘데스페라도(Desperado)’까지 30곡 정도를 거침없이 소화했다. 그들은 무대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이글스의 무대는 ‘오래된 것’으로 촘촘히 짜여 있었다.

36년 된 로드 매니저, 35년 된 투어 매니저, 36년 된 홍보 담당자, 온통 30년 이상 함께한 스태프들.

그리고 40년간 이글스를 사랑하는 팬들까지. ‘데스페라도’를 부르는 돈 헨리의 목소리보다,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노부부의 얼굴에서 이글스의 위대함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중앙일보

 

 

 

 

 

 

 

 

Desperado 연주곡

 


New Kid in Town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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