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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moon향 2014. 9. 18. 09:29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어렴풋이 보이고 멀리에서 들려옵니다.

어둠의 벼랑 앞에서
내 당신을 부르면
기척도 없이 다가서시며
"너가 거기 있었느냐"
"네가 그동안 거기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 야위셨습니까
못자국의 아픔이 아직도 남으셨나이까.
도마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나도
그 상처를 조금 만져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혹시 내 눈물방울이 그 위에 떨어질찌라도
용서하소서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냥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박사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