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세 계 명 시 편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 심보르스카

moon향 2016. 8. 9. 19:52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 보르스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 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수두룩

내가 한번 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이것은 옷핀, 저것은 머리빗.

종이로 만든 장미와 노끈, 주머니칼이 여기저기

내가 한번 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뭐, 아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열쇠여, 어디에 숨어 있던 간에

때맞춰 모습을 나타내주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녹이 슬었네. 이것 좀 봐. 녹이 슬었어."

 

증명서와 허가증, 설문지와 자격증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태양이 저물고 있나보죠."

 

시계여, 강물에서 얼른 헤엄쳐나오렴.

너를 손목에 차도 괜찮겠지.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넌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척하지만, 실은 고장났잖아."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엔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자, 열려진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하고 외쳐주세요!

바야흐로 내가 와락 울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끝과 시작> 심보르스카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