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 심보르스카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 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수두룩
내가 한번 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이것은 옷핀, 저것은 머리빗.
종이로 만든 장미와 노끈, 주머니칼이 여기저기
내가 한번 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뭐, 아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열쇠여, 어디에 숨어 있던 간에
때맞춰 모습을 나타내주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녹이 슬었네. 이것 좀 봐. 녹이 슬었어."
증명서와 허가증, 설문지와 자격증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태양이 저물고 있나보죠."
시계여, 강물에서 얼른 헤엄쳐나오렴.
너를 손목에 차도 괜찮겠지.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넌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척하지만, 실은 고장났잖아."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엔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자, 열려진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하고 외쳐주세요!
바야흐로 내가 와락 울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끝과 시작> 심보르스카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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