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증언하는 캘린더 - 이어령

moon향 2013. 11. 1. 09:45

증언하는 캘린더 
-이어령-
낙엽처럼 시월이 졌다. 
십일월은 가을과 겨울의 건널목…
이제 날이 춥다. 
정말 머지않아 첫눈이 내릴 것이다. 
나목(裸木)들의 앙상한 가지들이 떨고 있다. 
형틀이 삐걱거리는 것 같은 그 음산한 북풍은 
굳게 닫힌 우리들의 창문을 두드릴 것이다. 
비정의 겨울은 푸른 초원과 
소조(小鳥)가 울던 
평화의 그 수풀을 덮을 것이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조급해졌다. 
거리에서 파는 군밤의 따스한 촉감으로도 
이제는 썰렁한 마음을 달랠 수는 없다. 
마지막 국화들이 의연한 자세로 
가는 계절을 붙잡고 있지만 
그것도 결국 시들고 마는 것. 
모든 색채, 모든 향기 
그리고 모든 생의 운기는 
눈을 감고 동면 속에 잠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