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수도원
ㅡ 서영처
마른 담쟁이덩굴에 덮여 침묵은 자란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져서 창틀을 흔드는 바람, 삐걱대는 계단, 죽은 수도사들의 추억까지 우물우물 되새김질한다 천장에 가닿는 쑥대머리 기둥을 흔들어놓는 몸집 침묵의 등은 휘어진다 종 줄은 침묵의 둔부에서 자라나는 꼬리, 잡아당기면 목젖을 열고 큰 소리로 울어젖힌다 울다 그친 덩치는 혀를 빼물고 시간의 뼛가루 같은 눈발을 받아먹는다 수도원을 외투처럼 껴입고 먼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천년이 하루 같은 고요 속으로 깊어가는 겨울, 금빛 털이 숭숭 돋아 이따금 환해지는, 출출해진 덩치가 낮은 구름을 따 먹는다 외로워서 심심해서 오늘은 수도원을 이쪽 골짜기에서 저쪽 골짜기로 옮겨놓는다
ㅡ 시집『말뚝에 묶인 피아노』(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