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 박후기
아버지는 침묵했다
병 앞에서
간처럼 침묵했다
아버지 등 뒤로
죽음 몰래 다가설 때마다
위험하다고 툭툭
등 두드리던 기침, 소리
침묵하는 간
심장과 엄마는
언제나 혼자 뛴다
약을 사러 갈 때도
약을 먹여야 할 때도
두근두근 울먹울먹
혼자만 서두른다
아버지,
여전히 침묵하는 간
심장은 간 옆에 있지만
피(血)는
간에 닿기 위해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한다
엄마는 왜 날마다 병든
아버지 곁으로 돌아오는가
심장을 떠난 피는 어떻게
발끝까지 흘러갔다
간으로 되돌아오는가
집 나간 자식들은
아버지 몸속을
흘러다닌다 매일
변두리 혈관을
돌고 돌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죽은 아들은
아버지 몸속에서
그대로 죽은피가 되었다
아버지 누운 자리 아래
욕창이 슬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몸을 씻겨줄 때
자꾸만 커지는 아버지 음경
자꾸 커지는 엄마 한숨 소리
여전히 침묵하는 간
—《시작》2012년 겨울호
박후기 / 1968년 경기도 평택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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