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립스틱 발달사 - 서안나

moon향 2015. 3. 24. 16:11

립스틱 발달사

 

 

 

   고대 메소포타미아 인들은
   보석을 갈아 눈과 입에 발랐다
   립스틱의 기원이 되었다
   고대인들은 빛나는 눈과 입술로

   별에 닿고 싶어했다,
   라고 나는 단정한다

   그러므로 날개는 별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내 눈과 입술에
   별이 뜨고 날개가 돋는다,

   란 논법엔 오류가 없다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 몸을 짓이겨 입술을 칠했다
   굶주린 곤충들이 날아들었다
   여인의 입술을 위해 쉽게 목숨을 버렸다
   그러므로 죽음 속에서 립스틱은 빛난다,
   는 문장도 용서될 수 있다 

   별을 바라볼 때

   당신이 캄캄해지는 건 
   욕망의 얼굴과
   잠시 마주쳤기 때문이다
   당신은 욕망을 천천히 날아올라
   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아침마다

   당신의 입술에 날개를 그려 넣는 것이다
   입술을 칠하며 별을 건너는 것이다


   당신,

   반짝인다

 

 

 

  새의 팔만대장경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은 무르나 단단했다 나무를 바닷물과 뻘 밭에 묻어 결을 달랜다고 했다 나무의 습성을 내려놓는 치목(治木)이라 했다

   겨울 천수만의 새들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뻘 밭에 고개를 박은 새에게서도 산벚나무 냄새가 났다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옹이가 없는 둥근 선을 지녔다

   새가 새를 끌고 날아오르는 것은 몸 안의 팔만 사천 자를 구름에 적는 순간이다 서둘러 날아올라도 새는 뒤틀리거나 부러지지 않는다 경판과 경판 틈새 바람이 잘 통하였다 새의 모퉁이가 상하지 않는다

   팔만대장경을 읽는 데 30년이 걸린다고 했다 물속의 젖은 부처가 손을 내밀어 내 몸의 비린 경판을 읽는 것이 한 생이라면 사랑은 여기까지다 내 몸 가득 쓰인 육필 경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시집『립스틱 발달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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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제주 출생. 1990년《문학과 비평》등단. 시집『푸른 수첩을 찢다』『플롯 속의 그녀들』『립스틱 발달사』, 동시집『엄마는 외계인』, 평론집『현대시와 속도의 사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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