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는 배후가 없다 - 임영조
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날의 속된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들어 선문에 들듯
젖은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말리면 말린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몸을 기댄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흗어질
반골의 동지가 있을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
그리하여 이가을
볕으로 바람으로
피를 말린다
몸을 말린다
홀가분한 존재의 탈속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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