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 백 석 & 형 도

국수 - 백석

moon향 2014. 2. 26. 11:04

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러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딸느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삼엉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주그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낫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구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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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엣새 - 산에 있는 새. 백석은 '산새'와 '산엣새'를 구별해서 썼다.

나려 멕이고 - 계속해서 내려오고, 여기서 '멕이다'는 어떤 행위가 계속 이루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김치가재미 - 평북 방언으로, 겨울철에 김치를 묻은 다음에 얼지 않게 그 위에 지푸라기나 수수깡 따위로 만들어놓은 움막.

은댕이 - 아믈 이름으로 추정된다.

예데가리밭 - 대여섯 낮 동안 갈 정도 넓이의 밭. '하루갈이 밭' '사흘갈이 밭'과 같은 쓰임의 말.

삼멍에 - 산몽애, '산무에뱀' 의 고어.

분틀 - '국수틀' 의 평안 방언.

들쿠레한 - 들크레한, 조금 들큼한.

우물든덩 - '우물둔덕' 의 평안 방언. 우물 둘레의 작은 둑 모양으로 된 곳.

큰 마니 - '할머니'의 평북 방언.

짚등성이 - 짚등석. 짚과 등나무 줄기로 짜서 만든 자리.

자채기 - 재채기.

큰아바지 '할아버지' 의 평북 방언.

댕추가루 - 고춧가루. '댕추'는 '고추'의 평안 방언.

탄수 - 식초

아르궅 - '아랫목'의 평안 방언

 

<정본백석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