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 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그 사람 내게로 오네(시로 읽은 황진이)119~120쪽/우리 글/ 2004
'詩 詩 詩.....♡ > 백 석 & 형 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수 - 백석 (0) | 2014.02.26 |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0) | 2014.02.26 |
[스크랩] 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0) | 2013.12.19 |
[스크랩] 백석의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이동순 (0) | 2013.12.19 |
가무래기樂 - 백석 (0) | 2013.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