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金珖燮)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시인은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해외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여 활동하는 한편,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에 시대적, 민족적 고뇌와 저항이 융화된 시를 써서 주목받았다.
창씨개명 반대와 반일 사상으로 인하여 일제 말기에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을 맞아 문화계, 언론계, 학계, 관계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아서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아름다운 인간 의지를 원숙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육화시킨 작품들을 발표했다.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에도 창작의 붓을 멈추지 않아서 1977년 타계할 때까지
『동경(憧憬)』(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 등 다섯 권의 창작 시집과
『김광섭시전집』(1974), 그리고 『겨울날』(1975) 등의 시선집을 발간했다.
서울특별시문화상(1957),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69), 국민훈장 모란장(1970), 예술원상(1974) 등을 수상했다.
: 작품 읽기 :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저녁에」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랑」
이리로 오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아
저 달이 유난히 빛나면서
고인 듯이 흐르는 푸른 강 위에
자욱한 빛이 꿈처럼 풀려 오른다
물속에 고기와 산 속에 새와 언덕조차
취한 밤이니 너와 나를 새겨 놓고
말없이 저 달을 보낸 뒤에
문을 열고 너는 내 가슴에 불을 켜라
이제로부터 나는 너를 붙잡고 가리니
자연에 편만(遍滿)한 사랑과 함께
너와 나 사이에 다시 뜨는 달을 보며
우리는 이루어 새것을 열리라
아 드디어 돌아갈 날 함께 누우려나
팔을 베개로 아지 못할 표상이 시작되리니
그립다 서울 복판에 걸린 한 조각 하늘을
이름 새기고 갈 낯익은 종이로 삼을까
「詩人」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에 이천 원 아니면 삼천 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욱은 있는데
타는 노을에 가고 없다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내리고,
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행어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출처 - 활짝 웃는 독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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