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뿌리 - 김왕노
이 혹한의 겨울에 뻗어있는 민들레 뿌리는
봄을 찾아 언 땅을 필사적으로 뚫는 드릴이다.
아니면 아득한 곳으로 내려가
봄을 철철 길어 올리려는 마중물이다.
줄기, 잎, 꽃이니 다 처단된 채 뿌리만 남겨진 민들레
저 깊은 겨울에 잉걸불같이 뜨거운 심지로 박혀 있다.
지맥을 끊으려고 일제가 산정수리에 땅땅 박아놓은
쇠말뚝보다 더 강하고 부러지지 않는 뿌리
지난 계절은 영하의 날로도 얼리지 못할 뿌리를
뜨거운 말뚝으로 저렇게 땅땅 박아놓고 갔다.
아버지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추운 날을 견뎌
가정이란 꽃 기어코 피워내었듯이
나도 아버지처럼 이 땅에 깊게 내린 뜨거운 뿌리
언젠가 내게도 꽃 피는 봄날이 와
꽃을 피운다고 엄청 분주해질 것이다.
내가 만든 꽃의 신화로 별 푸른 밤도 올 것이다.
—《예술가》2015년 봄호
김왕노 / 1957년 경북 포항 출생.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사진 속의 바다』『그리운 파란만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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