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먼지처럼 - 이장욱

moon향 2015. 2. 2. 14:01

 

먼지처럼

 

 

                                                      -  이장욱

 

 

 

나는 코끼리의 귀가 되어 펄럭거리고

너는 개의 코가 되어 먼 곳을 향하고

우리는 공기 중을 부드럽게 이동하였다.

 

활명수(活命水)를 마시고 있는 약국 안의 사내와 함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자의 거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배경이 되어

무한히 지나갔다.

 

오늘 아침의 세계는 역사와 무관하고

어젯밤의 세계는 다만 어젯밤의 세계,

우리는 어지럽고 아름다웠다.

먼지처럼

음악처럼

 

오늘은 누군가 성수와 뚝섬 사이에서 사라지고

누군가 병든 유태인처럼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누군가 박물관의 입구처럼 조용해지고

아침에는 추리 소설 속의 탐정처럼 깨어났다.

 

노련한 사서들은 언제나 음악의 비유를 경계했지만

우리는 미래의 음표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에

집중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와 같이

 

나는 내일도 기린의 목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는 모레도 하마의 입처럼 무거워졌다.

우리는 삼십 년 후에도 가득한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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