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에게
- 전서린
기울고 터져 약하고 작은 것이니
네 안에 내가 들 수 있니
투명하면서도 가장 두꺼운 벽이었으니
너에게 나는 닿을 수 있니
들지도 놓지도 못하고 밖으로만 도는 주저함이여
길을 여러 개 나누는 것은
자리 잡은 중심을 버리는 일
충고도 아닌 애정도 아닌 질투도 아닌,
아닌 것들의 변명을 폐부 깊숙이 새기려다 달아날까
구경만 하는 물방울이여, 늦도록 도망간 소식이여
네 눈 속에 내가 들어가 도로 밖으로 나오는
보이지 않는 물방울이여, 멀리서 보면 고요함이여
다가오면 겹겹의 소리를 내는 방울이여
먼저 밥 먹고 나앉다 잊히지 않는 투명이여
네가 타고 다니는 구름 속에는 또 얼마나 많은 착각이
집과 산과 들이 믿고 닿는 방울이여
통통 튀어 오르다 기어이 제 안을 숨기고
화려한 기억으로만 남을 사치여 허상이여
울음으로 스스로 젖는 방울이여
그대 무너지는 힘이여
—시집『달팽이집』(2014)에서
전서린 / 부산 출생. 계간 《시인정신》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눈 녹듯 비 내리면』『구운 전어에 관한 보고서』『달팽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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