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화술사 하차투리안
- 박은정
하차투리안은 유랑을 한다
왈츠를 추듯 정글을 턴하고
수백 년 동안 사라진 기억을
단숨에 기억해내는 유연함
하차투리안은 단련되어간다
침묵으로 만든 꽃다발을 창에 걸고
무수히 오르내리는 밤들처럼
앞발을 들고 하차투리안
입을 열면 비가 내리고 강이 범람하고
떠내려간 사람들이 언덕을 기어오르지
당신에게 어울리는 표정은 말문이 막힌 표정
그러니까 슬프고 발랄한 침묵으로
오늘은 이상한 일들이 많을 테니까
귀가 먼 부랑자가 노래를 부른다
하차투리안 하차투리안
우리의 전사 하차투리안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도
날마다 비밀을 발설하지
하차투리안이 걷는다 두 팔을 흔들며
그의 마법이 뚱뚱해졌다 날씬해졌다
늑골 속에서 회오리가 분다
감정의 무감각과 무기력을
유일한 취미라고 하면 어떨까
당신의 입에서 나비가 날아다니고
내일 하루도 늙지 않고 죽을 수 있다면
하차투리안 하차투리안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도
생을 되풀이하는 복화술사
문득 살아온 날들이 행방불명된다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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