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김소월(1902~1934)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으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어룰 : '얼굴'의 평안도 방언
봄비 - 박목월(1915~1978)
조용히 젖어드는
초가지붕 아래서
온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월곡령 삼십 리
피는 살구꽃
그대 사는 마을이라
봄비는 와서
젖은 담 모퉁이
곱게 돌아서
모란 움 솟으랴
슬픈 꿈처럼.
비옷을 빌려입고 - 김종삼(1921~1984)
온종일 비는 내리고
가까이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린다
이십팔 년 전
선죽교(善竹橋)가 있던
비 내리던
개성(開城),
호수돈 여고생에게
첫사랑이 번지어졌을 때
버림 받았을 때
비옷을 빌려입고 다닐 때
기숙사에 있을 때
기와 담장 덩굴이 우거져
온종일 비는 내리고
사랑스러운 멜로디 트럼펫이
울릴 때
봄비 - 이수복(1924~1986)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푸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내 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 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그 봄비 - 박용래(1925~1980)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모스러진 돌절구 바닥에도 고여 넘치는 이 비천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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