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 도종환
잔가지 솜털 하나까지 파르르 떨며
눈꽃을 피워들고 서 있는 달밤의 숲은
그대로가 은빛 빛나는 암유의 궁전입니다
보름 지나면서 달의 몸 한쪽이
녹아 없어진 이유를 알겠습니다
몸을 납처럼 녹여 이 숲에 부어버린 것입니다
달빛에 찍어낸 듯 나무들이 반짝이며 서 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 한 개씩의 공안입니다
다보여래가 증명하는 화려한 은유의 몸짓입니다
체온이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깊고 외롭고 처절한 시간 속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적멸의 언어를 만나는 것입니다
생의 가장 헐벗은 시간을 견디는 자에게 내린
혹독한 시련을 찬란한 의상으로
바꾸어 입을 줄 아는 게 나무 말고 또 있느니
돌아가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돌아가는 동안 부디 침묵하고
돌아가 알게 되어도 겨울나무들의
소리 없는 배경으로 있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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