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 詩.....♡/떠 오 르 는 詩

비만 고양이 - 김기택

moon향 2013. 4. 2. 10:18

비만 고양이    김기택

 


쥐구멍이 없는 아파트.
쥐약과 덫이 없어도 쥐가 살 수 없는 아파트.
쥐 대신 바퀴벌레를 잡을 수도 없어
종일 누워 있는 고양이

어두운 곳에 은밀하게 숨어 있지 않는 먹이들.
눈과 귀가 달려 있지 않아 뛰어 도망다니지도 않는 먹이들.
발버둥칠 다리가 없는 먹이들.
한번 갖다놓으면 접시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한자리만 고집하며 얌전하게 담겨 있는 먹이들.
가르릉거리는 목과 등을 쓰다듬는 흰 손이
시계와 저울처럼 정확하게 갖다주는 먹이들.
피가 묻어 있지 않는 먹이들.
비명과 비린내와 체온이 위생적으로 제거된 먹이들.
수저 같은 입만 있으면 목만 움직여도 편히 먹을 수 있는 먹이들.
아파트에 최적화된 발소리 없는 발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아래층에서 씩씩거리며 올라올 목소리도 없지만
고기처럼 먹음직스럽고 뚱뚱한 쏘파 위에서
쿠션처럼 종일 누워 있는 고양이.
맨 처음 갖다놓은 자리에 아직도 그대로 있는 가구처럼
한 번 심어놓으면 절대로 화분을 떠나지 않는 화초처럼
정해진 자리에만 가만히 누워 있는 고양이.                      

 

 김기택 시집 <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