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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쓰레기매립장 가는 길 - 박형권

moon향 2015. 8. 12. 12:37

생활쓰레기매립장 가는 길 - 박형권

 

 

 

어제 나는 먹다 남긴 치즈 조각이었다가

오늘은 어디를 덧대어도 더러움을 빨아들일 수 없는

행주 조각이 됐다

유월 아카시꽃 주르르 흐르는 이 길은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길

꽃 따라 마지막으로 향한다면 그리 섭섭할 것은 없다

생활쓰레기매립장이 산중턱에 있어서 오르막을 오르면

내가 탄 오물 칸에서 운명처럼 꽃이 진다

나는 한때 잘나가는 사내의 백구두였고

결혼식장의 흰 목장갑이었고

처녀의 허리를 죄어 주는 코르셋이었고

뒷산 소쩍새 소리를 듣는 이어폰이었다

가끔은 애인이 나를 발견하게 되는 안경테였다

아주 잠깐이었다 꿈속의 꿈이었다

나는 생활쓰레기로 분류되어 당신을 기억한다

당신이 사는 세계에서는

당신이 당신을 분류하고 다른 당신이 다른 당신을 분류한다는 것을

분류하다가 끝나는 인생과

분류되다가 끝나는 인생, 단 두 종족만이 남았다

나를 실은 위생과 트럭이 느리고 힘센 기어로 변속하고

초여름을 뻘뻘 흘리며 기어오른다

싱크대의 홈통에 낀 라면 면발들에게도 한번은 꽃 피어라고

누가 이런 꽃길을 열어 놓았다

아, 천 년 썩을 터전이 다가온다

고맙다, 나는 당신이 쓰다 버린 천 년이었다

 

 

                      

《문장웹진》2015년 8월호

 

 

 

 

박형권/ 1961년 부산 출생. 200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우두커니』『전당포는 항구다』『도축사 수첩』, 장편동화『돼지 오월이』『웃음공장』, 청소년 소설『아버지의 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