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 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끝에 쪼그려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놀랜 강 - 공광규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남기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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