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게임 내 시는 아무래도 가을날 볕 잘 드는 사랑방에서 댓살을 다듬고 한지를 자르며 싸드락싸드락 만드는 연 같은 것이어야겠다. 어린 아들놈은 목을 몇 자나 빼고서는 내 무릎 앞을 지키고 앉아 있겠지. 어린 아들놈이나 아들놈의 동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옛날에 웃어른들에게 배워 지금 어린것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연을 만드는 일이니, 시를 쓰듯이 즐겁게 나는 연을 만들어야겠다. 물론 돈을 내고 사서 띄우기만 하면 되는, 비닐로 만든 가오리연은 동네 문방구점에 가면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아비가 직접 풀을 바르고 꽁숫구멍을 뚫어 상하 좌우의 균형을 맞춘 방패연에 비길 바가 아니다. 제 잘난 멋에 요리조리 공중을 헤엄쳐 다니며 까부는 가오리연 같은 시들이 결국은 바람 앞에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것을 그 동안 자주 목격하였거니와 공중으로 상승하는 속도는 느리되 그 유장한 몸짓으로 떠오른 뒤에는 스스로 흔쾌히 겨울 하늘의 창문이 되는 방패연 같은 시가 그리워지는 시절인 까닭이다. 적어도 시인이라 하면 언어를 갈고 다듬으며 살리는 데 공력을 들여야지 언어를 흔들고 내팽개치며 혹사시키는 일에 나서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시란 언제까지나 언어의 게임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 시쓰기는, 지상과 천상의 다리를 놓는 바람의 게임, 즉 연날리기와 같은 것이어야겠다. 연을 날릴 때는 당연히 얼레를 잡은 손은 연줄을 풀어야 할 때 풀고 당겨야 할 때 당길 줄 알아야 하는 법, 그렇다면 나도 내 손에서 언어를 풀 때는 풀고 당길 때는 당길 줄 아는 시인이어야겠다. 한때 나는 그 긴장의 끈을 지나치게 잡아당겨 팍팍한 고구마 같은 시를 썼는가 하면, 또한 그것을 지나치게 풀어놓아 헛헛한 무 같은 시를 쓰기도 하였으니 살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연과 나 사이의 거리처럼 아득한 것. 그것을 굳이 자를 끄집어내 한 치 두 치 재야 할 일은 아니며, 그 아득함에 취해 함부로 이 세상 밖을 동경하는 일은 더욱 아니 될 일이다. 연을 날리는 일과 시를 쓰는 일과 그리고 살아가는 일이 결국은 따로 있지 않으므로 매사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다만 연을 날리다가 보면 연줄을 뚝, 끊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을 날려보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의 언어가 문득 나를 떠나가려 한다면 미련 없이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 하겠다. -안도현시집 <바닷가 우체국>의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 시에는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 첫째는 이치(理)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意)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想)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自然)이 높은 경지이다. 막혀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통하는 것을 이치가 높은 경지라고 한다. 표현해낸 것이 표면적인 의미를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 깊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연못이 맑아 밑바닥이 다 보이듯이 훤하고 분명하게 써내는 것을 상상력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 특이하지도 기이하지도 않으면서 문채(文采)를 벗어 떨치고, 그것이 오묘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 그 오묘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시에는 네 종류의 높은 경지가 있다. 첫째는 이치(理)가 높은 경지요, 둘째는 뜻(意)이 높은 경지요, 셋째는 상상력(想)이 높은 경지요, 넷째는 자연스러움(自然)이 높은 경지이다. 막혀 있는 듯하나 실제로는 통하는 것을 이치가 높은 경지라고 한다. 표현해낸 것이 표면적인 의미를 초월하게 되는 것을 뜻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 깊어 분명하지 않은 것을 마치 연못이 맑아 밑바닥이 다 보이듯이 훤하고 분명하게 써내는 것을 상상력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 특이하지도 기이하지도 않으면서 문채(文采)를 벗어 떨치고, 그것이 오묘하다는 것만을 느낄 뿐 그 오묘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을 자연스러움이 높은 경지라고 한다. -강기, [백석도인시설] 무릇 시를 짓는 것의 실마리는 여기에 있다. 반드시 먼저 사물에 접촉하여 자신의 정지(情志)를 일으킨 다음에 그것을 문사로 표현하고, 모아서 구절을 만들고, 넓혀서 문장을 이루어야 한다. 촉발된 바가 있어서 흥취를 일으킬 때에는 그 내용이나 문사나 구절들이 허공을 가르고 생겨나니, 이는 모두가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고 현재에 있는 것을 따라서 그것을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작품으로 표현되어서는 감정을 묘사한 것이 되기도 하고, 경물을 묘사한 것이 되기도 하고, 인사(人事)를 묘사한 것이 되기도 하는데, 이것들은 남들이 일찍이 표현해낸 적이 없는 것이고, 내 자신이 처음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과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모두 진실로 즐거이 오래 갈 수 있는 것이다. 무릇 창조해내는 작가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흥취가 이르는 곳마다 무심코 그것을 표출해내는데, 그것이 곧 법도가 되고 법칙이 되는 것이다. -엽섭, [원시] |
>>시인과 시집들<< ▒ 어느 별에서의 하루/ 강은교 / 창작과비평사 ▒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안도현 / 현대문학북스 ▒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박남준 / 문학동네 ▒ 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 이정하 / 아래 아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장석남 / 문학과 지성사 ▒ 호박꽃 당신/ 정재윤 / 행림출판 ▒ 사랑굿/ 김초혜 / 韓國文學社 ▒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 열림원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 문학과지성사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 그림같은 세상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 신어림 ▒ 건축무한육면각체/ 이상 / 세상속으로 ▒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 / 미래사 ▒ 시간의 얼굴/ 이해인 / 분도출판사 ▒ 낙타의 울음소리/ 조병화 / 東文選 ▒ 너를 만나러 가는 길/ 용혜원 / 책만드는집 ▒ 누가 그렇게 살라 한다/ 김기린 / 삼한 ▒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 고려원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 열림원 ▒ 三南에 내리는 눈/ 황동규 / 민음사 ▒ 접시꽃 당신/ 도종환 / 실천문학사 ▒ 그대, 거침없는 사랑/ 김용택 / 푸른숲 ▒ 한 사람을 사랑했네/ 이정하 / 자음과모음 ▒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 / 푸른숲 ▒ 네가 내 가슴에 없는 날은/ 용혜원 / 베드로서원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 열림원 ▒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2/ 백창우 / 신어림 ▒ 하루에 한번은 내 생각하기/ 정우경 / 한림원 ▒ 죽어서도 내가 섬길 당신은/ 손종일 / 여울 ▒ 지금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 열림원 ▒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1/ 백창우 / 신어림 ▒ 남 남/ 조병화 / 一志社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 열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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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자연과 삶의 향기
글쓴이 : 피츠로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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