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우리 시대의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5권의 시집(1) / 계간 시인세계
시인들은 어떤 시를 읽으며 자기세계를 키워왔는가. 계간 시지 《시인세계》는 현재 시단에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156명의 시인들에게 한국 현대시 100년 동안 간행되었던 시집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시집 한 권을 추천하거나,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뽑아달라고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자신의 시의 기호와 취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설문에 답해 주었습니다. 설문에 응해주신 시인 여러분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 편집자-
설문 조사 | 시집별 순위
1. 백석 '사슴' : 12명
2. 김수영 '거대한 뿌리' : 10명
3. 정지용 '정지용 시집' : 9명
4.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 8명
5. 서정주 '화사집' : 6명
6. 정지용 '백록담' : 5명
7. 김소월 '진달래꽃' : 5명
8. 이상 '이상 전집' : 5명
9. 김종삼 '북 치는 소년' : 5명
10. 김춘수 '꽃의 소묘' : 4명
11.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4명
12. 서정주 '동천' : 3명
13. 서정주 '질마재 신화' : 3명
14. 신경림 '농무' : 3명
15. 강은교 '풀잎' : 3명
16.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2명
17. 이육사 '육사 시집' : 2명
18. 서정주 '서정주 시선' : 2명
19. 박용래 '먼 바다' : 2명
20. 박재삼 '천 년의 바람' : 2명
21. 김종해 '항해일지' : 2명
22. 오규원 '순례' : 2명
23. 이성복 '남해금산' : 2명
24. 송찬호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 2명
25.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 2명
26. 홍신선 '황사바람 속에서' : 2명
설문 조사 | 시인별 순위
1. 서정주 : 14명
2. 정지용 : 14명
3. 백석 : 12명
4. 김수영 : 11명
5. 이성복 : 11명
6. 김종삼 : 6명
7. 김춘수 : 6명
8. 이상 : 5명
9. 김소월 : 5명
10. 기형도 : 4명
11. 황동규 : 4명
<총론>
우리 시대를 빛낸 다섯 권의 시집
김 인 환 |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시인세계》에서 156명의 시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집을 물어본 결과, 백석의 『사슴』(12),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10),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9),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8), 서정주의 『화사집』(6) 등의 다섯 권이 선정되었다.
서정주의 경우 『동천』, 『서정주시선』, 『질마재 신화』 같은 시집들도 올라와 있으므로 시집이 아니라 시인으로 보면 서정주와 정지용(14), 백석(12), 김수영과 이성복(11)의 순서이다.
정지용은 1902년생, 백석은 1912년생, 서정주는 1915년생, 김수영은 1921년생, 이성복은 1952년생이다. 이 다섯 분의 시적 특색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지용芝溶과 미당未堂은 채彩요
백석白石과 수영洙暎은 기氣요
성복晟馥은 기채간氣彩間이라
이번 설문으로 우리는 한국의 현대시에 예술가의 계보와 투시자의 계보가 있고 이 두 흐름이 이성복에게 모아져 모험을 찾아 떠나는 최근의 시인들에게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71년생인 한용운과 1902년생인 김소월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의외라고 하겠으나 이러한 결과도 최근의 시인들이 자기들의 위상을 현대시의 영역 안에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시가 지적 인식을 통하여 얻은 관찰 결과를 규칙적 음악으로 번역한다면, 현대시는 지적 인식을 포기하고 비유의 조명을 통하여 상상적 초상을 그려낸다.
왕조말의 시국가사나 카프시절의 뼈다귀시에서 보듯이 우리 시는 1920년대까지도 주로 고전시의 자장 아래 놓여 있었다. 우파의 계몽주의와 좌파의 사회주의는 모두 세계에 대한 합리주의적 관념을 바탕으로 해서 감수성을 무시하고 무의식을 짓눌러버렸다. 그러나 계몽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함성은 전면항일이 될 수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이성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계몽의 논리가 감성에는 폭력적이었으나 일제에는 유화적이었기 때문이었다.
1930년대의 시인들은 이성의 척도로 본다 해도 시국가사나 뼈다귀시보다는 한용운과 김소월의 시가 민족정신의 심층을 보존하는 정당한 이성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무절제하고 장황한 언어관습이 당연한 듯 여겨져 온 시기에 이어 등장한 시인들은 말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훈련을 중요하게 여기고 적게 말함으로써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였다.
시 속에서 오직 관념만을 고려하고 여러 가지 관념들을 조립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은 시적 체험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인들은 관념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했다. 앵무새처럼 딴 데서 들은 상투어들을 반성 없이 반복해서 배열해 놓는 계몽주의와 사회주의 시대의 합리주의 문학에 반기를 드는 시운동이 모습을 갖추면서 한국의 현대시는 정신의 모험, 무의식의 드라마가 되었다. 그 최초의 성과가 1935년에 시문학사에서 박용철이 편집하여 낸 『정지용 시집』이었다.
시를 주관적 정서의 토로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이 시집은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정지용 시집』은 객관성에 도달하지 못한 시는 주관적 정서에도 결함을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증명하였다. 주체가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스스로 자신을 지각하기 위하여 주체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정지용만큼 절실하게 인식한 시인은 그전에는 없었다. 말은 기호의 기능을 넘어서서 말이 환기하는 사물 그 자체와 하나가 된다.
정지용은 대상들 앞에서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단 하나의 질문을 집요하게 되풀이하였다.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는 사물의 외연이 아니라, 보편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물의 형태와 색채를 포착하여 대상에 함축되어 있는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그의 방법이었다. 시의 광채를 흐리게 하고 시의 걸음을 무겁게 하는 찌꺼기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그는 말의 암시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망토 깃에 솟은 귀는 소랏속같이
소란한 무인도의 각적을 불고
-「해협」에서
단순한 단어 한두 개의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분위기가 창조된다.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닳아빠진 것이 모습을 바꾸고 신선한 가치를 나타낸다. 사물들 속에 잠겨 있던 신비가 살아나는 것이다.
첫 장에 꽃뱀이 그려져 있는, 서정주 시집 『화사집花蛇集』은 1938년에 남만서고南蠻書庫에서 출간되었다. 화사花蛇와 청사靑蛇가 나오고 죽음과 애욕과 방황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이 시집은 『정지용 시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정지용 시집』과 견주어도 만만치 않은 시의 전압電壓을 전달하였다.
『화사집』에는 『정지용 시집』에 없는 리듬의 힘이 있었다. 언젠가 박목월은 젊었을 때 시가 안 나오면 아이를 재웠다고 하면서 서정주의 집에 가보았더니 시가 안 되니까 마루를 떼굴떼굴 구르며 울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정주는 시에 모든 것을 건 시인이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시를 썼고 목숨을 걸고 글을 읽었다. 이 시집에도 구약과 신약, 이백과 보들레르가 나오지만, 그는 “스무 살에 니체가 무릎을 뚫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박한영 스님 밑에서 『능엄경』도 그런 자세로 읽었을 것이다.
『화사집』의 특색은 일종의 신체적 사고에 있다. 젊은 시인들은 서정주로부터 광기에 가까운 치열성을 가지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지, 자기의 운명을 시에 걸겠다는 의지를 배웠을 것이다. 이 시집에는 엄밀하게 말해서 객관성이란 것이 보이지 않는다. 서정주에게는 자기 밖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향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는 자기의 존재 그 자체를
우주적인 생명으로 인식한다.
원수여, 너를 찾어 가는 길의
쬐그만 이 휴식
-「도화도화」에서
원수를 찾아 헤매는 자의 초조와 불안이 시집 전체에 깔려 있으면서도 어디선가 은총처럼 내려오는 휴식이 시를 파탄에서 구원해낸다. 일종의 정신착란 같은 데가 없지 않은 서정주의 이 시집은 비교적秘敎的인 세계를 편력하는 정신의 거의 절망적이라고 할 만한 대담성을 가지고 섬광같이 아름다운 몇몇 이미지들이 환기하는 암시의 마력으로 무의식 속에 묻혀 있었던 태고적 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백석은 1936년에 시집 『사슴』을 선광鮮光인쇄 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하였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평북방언과 토속음식과 유년의 시각을 『사슴』의 특징으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시집에 대한 그토록 폭넓은 호응과 그 숱한 메아리를 오로지 몇 가지 미학적 장점만을 통해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백석의 이 시집에는 형이상학적 서정성이 깃들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탄을 형이상학의 근원으로 제시하였다. 『사슴』의 화자인 아이들은 원인과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경탄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이러한 유년의 시선 속에 개념이 비틀어 놓기 이전의 원초적 형이상학이 내재한다. 가난과 고독에 대하여, 짐승들과 귀신들에 대하여 받은 큰 충격을 그 아이는 삼촌과 고모와 이웃들의 사랑으로 견뎌낸다. 유년의 고향은 성장한 백석이 현실의 억압을 탈출하여 찾아가는 다른 세계이다.
『사슴』에 등장하는 평북방언은 백석에게도 다루기 쉬운 질료가 아니었다. 다 같은 정주 사람이지만 김억은 인공적인 문학어를 만들어 썼고, 소월은 서울말 속에 평북방언을 섞어 썼으나, 백석은 전적으로 평북방언을 사용하였다.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 표준어와 맞춤법을 제정한 후로 언론 출판 매체들은 그 규정을 준수하였다.
신문사에 근무하던 백석은 누구보다도 언어 사용 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시에 문법적인 오류가 없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표준어 규정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석은 평북방언의 어휘를 대량으로 사용했으나 문법만은 서울말의 통사규칙을 지켰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나, 시를 읽는 사람에게나 질서란 그것이 매우 다루기 어려운 재료를 지배함으로써 전취된 것일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방언을 지나치게 중시할 경우에 『사슴』 읽기는 수사학 연습이 될 염려가 있다. 우리는 유년의 시각에 들어 있는 한 젊은 시인의 내면적 침묵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골족」에서
‘맛있는’이라는 형용사 하나를 제외하면 이 구절의 어느 부분에도 유년의 시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고향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낙원의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내면의 고향은 언젠가 다시 찾아야 할 잃어버린 낙원이다. 이 시집의 이미지들은 문학의 호적부에 등재된 이미지들이 아니다.
백석은 우리 문학에 낯선 이미지들을 그의 시 속에 끌어들여 식민지 생활의 근본적인 지리멸렬함을 암시하였다. 그는 수사적 장식들을 배제하고 경험을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전근대와 근대의 불일치에서 시인 자신이 지닌 모순의 아날로지를 발견했다. 처음부터 이해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꿈을 통해 감지되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기억에 떠오르는 그대로 포착하려고 한 것이다. 순수하고 무용한 유년의 고향에서 은밀한 친화력이 향기처럼 스며 나온다.
김수영은 1968년에 죽었다. 그의 시집 『거대한 뿌리』는 민음사에서 1974년에 나왔다. 강희근은 이 시집을 읽고 나에게 시가 되는 것은 16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때 나도 대체로 그의 의견에 동의했는데, 이 시집에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가 많고, 완성도가 낮은 시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의 완성도란 작품의 자기지시성을 말한다. 한 편의 시를 열심히 읽으면 그 시의 모든 문제가 작품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완성도가 높은 시라고 한다.
김수영의 시들 중에는 시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작품이 적지 않다. 시인의 생애라든가 사회상황에 대하여 알아야 해결되는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시인들이 김수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데는 응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즈음 들어 나는 시를 문학의 차원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이 줄 수 있는 것만을 시에 요구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에 손을 대지 않는 문학주의가 오히려 시를 위축시키는 것이나 아닐는지? 시는 어떻든 행위와 사실들을 제시하게 마련이니 시가 윤리학적 인식을 위한 어떤 비상수단이 되어도 무방할 듯하다. 삶을 변화시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존재 그 자체와 만나게 하고자 하는 어떤 욕구가 시의 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김수영은 밝음과 어두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포섭하려고 하였다. 꿈과 삶은 다같이 시인의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의식 특유의 위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관습적인 윤리학과 결별하고 그는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무의식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은 무의식뿐이며 무의식만이 표현될 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김수영은 삶을 통째로 움직이게 하려면 가정의 관습적 쳇바퀴에서 벗어나야 하고, 기성의 질서에서 이탈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당시에 풍미하던 민족주의에 동조하지 않았고 사회주의에도 찬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 어떤 종류의 낙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불신봉주의와 비순응주의를 유일한 목적으로 설정하고 이데올로기적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무의식까지 포함하는 존재의 원초적 상태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의식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김수영은 구어의 독백에 의존하였다.
우리들은 빛나지 않는다. 어제도 빛나지 않고
오늘도 빛나지 않는다. 그 연관만이 빛난다.
시간만이 빛난다. 시간의 인식만이 빛난다.
-「엔카운터지」에서
위에 인용한 부분을 제외한 이 시의 나머지는 모두 요설로 채워져 있다. 일반적으로 시인들은 뜻이 통하는 말을 하면서 그 말들의 사이에 하나나 둘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김수영은 시의 대부분을 뜻이 안 통하는 말로 채워놓고 그 사이에 아주 쉬운 문장을 집어넣는다. 빗나간 소리 속에서 쉬운 말이 이미지의 역할을 하도록 시를 쓰는 것이 김수영의 방법이다.
김수영 아닌 다른 시인이라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같은 문장을 시가 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구어체의 독백으로 말의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었고, 사고와 표현 사이의 거리가 줄여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며, 무의식의 힘이 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예기치 않은 순간에 훔쳐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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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상의 속도는 김수영을 생각나게 하지만 김수영의 시보다는 훨씬 정제되어 있다. 시마다 헛소리와 빗나간 소리를 묶어주는 중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서정주와 김수영의 압력을 소화하여 새롭게 구축한 성과이다. 이성복의 이 시집에서 시적 감각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발견의 수단이 되어 무의식의 중핵에까지 그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이성복은 이 땅의 어느 누구보다도 형이상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시인이지만 주역에 대한, 불교에 대한, 가톨릭 철학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바탕이 불안전한 장소에서 위태롭게 자신을 견디고 있으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경련하는 무의식의 이미지들은 모든 형이상학적 확신들에 오히려 위해를 가하고 있는 듯하다.
이성복의 상상력은 발에 힘을 빼고서 상처와 고통의 사이를 유연하고 부드럽게 선회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면 진실되지 않은 것이란 없다고 그는 믿는다. 이성복에게 세계는 이미지의 저장고이며 사물들은 판독해야 할 형상들이다. 이 시집은 우리들의 정상적인 습성을 구성하는 고정된 믿음을 문젯거리로 설정함으로써 위축된 영혼의 탄력성을 다시 살려내고자 하는 상상력의 모험이다.
나는 놀고 먹지 않았다
끊임없이 왜 사는지 물었고 끊임없이 희망을 접어 날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에서
당장은 그 의미가 불확실한 사물들은 그에게 혼란을 야기하는 기호들이 아니며, 존재의 원천에 다가갈 수 있도록 그를 유인하는 상징들이다. 이성복은 아날로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삶과 꿈의 사잇길을 모색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지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심리적인 모험이다. 꿈꾸는 것과 유사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하여 이성을 잠재워야 한다는 것을 이성복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실제적인 목적에 맞추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목적을 배제하고 말이 흘러가는 대로 말에 몸을 맡기는 이성복의 방법은 젊은 시인들에게 자양을 공급할 만한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다섯 권의 시집들은 새로운 시인들이 전진해 나아가야 할 처녀지를 비춰주는 등대들이다. 젊은 시인들은 그 시집들이 성취한 것뿐 아니라 실패한 것에서도 모험의 질료를 찾아내야 한다. 정신의 탐구에는 무임승차가 있을 수 없다.
시의 역사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곡절들과 위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전대의 성공이 후대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작품의 가치는 시인이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가지는 어떤 참됨에 비례한다.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시는 어느 시대에도 가능한 존재의 사건이다. 존재의 개현과 영혼의 접촉은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자신을 맡기는 수동적인 길과 의도적인 고행을 자진해서 떠맡는 능동적인 길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김인환 1946년생. 1972년 《현대문학》에 「박두진론」이 추천되어 등단. 저서 『문학과 문학사상』, 『문학교육론』, 『비평의 원리』, 『상상력과 원근법』, 『기억의 계단』, 『다른 미래를 위하여』, 『글쓰기의 방법』, 『동학의 이해』, 『주역에세이』 등이 있음.
백석 시집 『사슴』
흙 속에 묻혀 있던 시인 백석
이 동 순 | 시인·문학평론가, 영남대 교수
백석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시단을 대표하던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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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0년대의 서슬 푸르던 시절만 하더라도 북한을 선택해 올라갔거나, 북한에 잔류한 문학인들의 경우는 전혀 공식적으로 거론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일부 문학인 중에 백석, 이용악 등의 시집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구류를 살고 나온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지요.
그때는 말 그대로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군사적 획일주의로 가득하던 시절이라, 이를테면 백석의 문학이 왜 금지되어야 하는가? 혹은 백석의 문학 어느 부분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는가? 따위의 원인 규명이나 항변은 전혀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백석은 그가 어떤 이유에서건 북한에 잔류하며 활동했으므로 그의 문학이 마땅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단순 논리만이 통용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납월북, 혹은 재북 문학인들에 대한 해금解禁은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에야 드디어 시의성을 잃은 발표가 있었지만, 그래도 당시의 해금조치는 일단 반가운 조치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백석 시인의 경우는 그래도 다른 해금문인들에 비해 비교적 행복한 처지가 아닌가 합니다. 해금 직전에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의 시 전집이 출간되었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백석시전집』에 대해 뜻밖에도 커다란 반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자극 고무되어 전국의 각 대학 국문학과에서 대학원 졸업학위 논문으로 백석의 시를 중점적으로 연구 분석한 것만도 현재까지 어림잡아 200여 편이나 됩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 문학 교재에까지 반영되고, 수능시험에도 출제될 정도가 되어서 이젠 어린 학생들조차 백석이란 이름을 기억할 정도이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백석의 시가 그만큼 대중들과 친숙해질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고향 부재, 고향 상실의 시대에 백석의 시집 『사슴』(1936)이 도란도란 옛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따뜻하고 또 향기 있는 고향의 맛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지요? 살아가는 고단함 때문에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심한 독자 여러분들에게 백석의 시는 틀림없이 풋풋하고 즐거운 위로를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시인 백석이 살아 생전에 자신의 문학적 스승으로 생각을 한 사람은 여럿입니다. 거기에는 평북 오산학교의 선배였던 김소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 아일랜드의 모국어에 긍지를 가지고 글을 쓴 작가 제임스 조이스 등등 그 수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다 일본의 국민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1886~1912)를 하나 더 보탤 수 있을 것입니다.
한때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자야金子夜 여사의 증언에 의하면 백석은 일본 유학시절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에 매우 심취했었다고 합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백석은 마음이 산란할 때면 이시카와의 시를 읽으면서 평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ホ行이며, 백석白石이란 이름은 필명입니다. 이 필명에서의 ‘석石’이란 글자도 자신이 너무도 존경하던 시인 ‘이시카와(石川)’에서 한 글자를 따왔을 정도였다고 하니 정신적 스승에 대한 흠모의 정이 어떠하였으리라는 것을 가히 짐작하게 합니다.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일본 문학사에서 명치 시대의 편협하고 관념적이던 일본 단가의 성격을 서민의 애환이 깃든 생활적 주제, 민중적 경향으로 해방시킨 최초의 시인입니다.
백석은 이시카와가 폐결핵으로 불우한 생을 마감하던 1912년에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들의 육신은 이승에서 서로 만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백석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비로소 이시카와라는 문학의 스승을 시집으로 발견하였고, 그를 정신적으로 사숙私塾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백석의 문학과 이시카와 타쿠보쿠 문학이 지닌 동질성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을 뿐 아니라 고향 이미지의 변용이 거의 대지에 뿌리박은 원초적 모성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 정들은 고향 그 사투리 그리워/ 정거장으로 붐비는 사람 속에/ 고향말 찾아가네
장난하듯이 엄마를 업어 보니/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눈물/ 세 걸음 걷지 못해
돌팔매질에 쫓기어 달아나듯/ 떠나온 고향 그 막막한 서글픔/ 가실 날이 없어라
펄럭 퍼얼럭 수숫잎 소리 나는/ 정들은 고향 그 처마 그리워라/ 가을 바람이 불면
-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여러 작품에서 가려 뽑음
②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잔이 뵈었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군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백석, 「주막」 전문
두 시인이 모두 타향에서 고향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백석의 시작품이 이시카와의 작품보다도 오히려 즉물성卽物性이 더욱 짙게 느껴지고 또 경험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둘째로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을 가난한 사람, 삶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서민에서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폐병 앓는 엄마와 그 아들인 고학하는 소년, 가난한 목수와 그의 아내, 여행 가방을 무릎에 얹고 전차에서 졸고 있는 어느 떠돌이 여인, 마구간의 병든 말, 대장간의 백치아이, 숲 속 외딴 집의 늙은 노인, 홀아비로 살고 있는 친구, 주막집 외진 구석에서 접시를 닦는 가련한 여인, 둥그런 실꾸리 굴려가면서 양말을 짜고 있는 여인 등이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민중적 군상이 백석의 시에서는 주막집의 왁자지껄한 떠돌이 장사꾼들, 결핵을 앓고 있는 객주집 딸의 창백한 얼굴, 달밤에 목매어 죽은 수절과부, 남편과 딸을 잃어버리고 여승이 된 어느 가련한 여인, 일본인 주재소장 집에서 식모 살던 소녀 등의 쓸쓸한 광경으로 나타납니다.
①소리도 없이 눈 내려 쌓이는 겨울밤
숲 속의 외딴 집에, 늙은 그대가
오직 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오
-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겨울밤」 부분
②신살구를 잘도 먹더니 눈오는 아침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았다
인가 멀은 산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짖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 백석의 「적경寂境」 전문
셋째로 일본의 전통적 단가가 지닌 고답적이고 관념적인 제한성을 구체적 생활 속으로 끌어내려 본격적 생활 단가를 이룩한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성과에 커다란 감동을 받은 백석은 한국의 전통적 사설시조 양식에서 새로운 창조와 계승의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백석 시집 『사슴』(1936)의 상당한 부분에서 이러한 형태적 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주제나 소재에 있어서의 상호공통성, 표현 형태나 비유에 있어서의 유사성, 가치관과 세계관의 유사한 비교 등 새삼스럽게 다루어 볼만한 중요 테마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정신적 영향을 주고받은 문학인들의 작품을 나란히 펼쳐놓고 비교해 가면서 읽어보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독서방법이 아닐까요?
가령 청록파 시인들의 문학적 원형을 정지용의 작품에서 찾아본다든가, 윤동주의 시집을 백석의 시전집과 함께 펼쳐놓고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이 되겠습니까?
이동순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첫 시집 『개밥풀』 이후 11권 발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10권) 완간.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등 도합 33권. 백석, 권환, 조명암, 이찬, 조벽암 등의 시전집 발간. 현재 영남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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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06 [10:13] : 최종편집: ⓒ 문화저널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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