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빈센트 반 고호에 대한 얘기를 드리려고 해요^^ 다소 길지만 위대한 화가에 대해 잠시 반추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라 생각하시면 허튼 시간은 아닐 것 같아요^^ 언젠가 부터 정리하고픈 글이었는데 오늘에야.....
(주; 반 고흐'라 발음하는 것이 맞는 듯 한데, 우리에게 친숙한 발음인 '반 고호'로 글을 이끌었습니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그 시대의 이단아 혹은 이방인이 되어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 )'만큼 고단한 삶을 살다간 예술가도 드물 것입니다. 고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네델란드에서 출생하여, 한 때는 오로지 신의 사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나 이루지 못하고, 그의 나이 27세 무렵인 1880년 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한 적도 없으며 프랑스에서 화가로 활동하며 구원의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끝까지 그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질환으로 질곡의 삶을 살다가 권총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37세에 짧고 혹독하고 고독했던 그의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예술은 천재적 감성이 광기로 표현된 결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호 만큼 천재성과 광기가 생전의 현실에서 철저히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가는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호의 삶은 처절하리만치 숨겨진 그만의 예술세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사후에 그의 그림들의 가치가 빛을 발하여 세계 최고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데..정작 그는 생전에 단 한점의 그림만을 팔았다고 하니...그 운명의 가혹함에 숙연해질 따름입니다. 이러한 불운과 함께 고집불통의 성격..번번히 좌절당한 여성편력...계속되는 실패와 극복치 못한 고독감에서 찾아온 조울증으로 인한 정신병 등...더없는 모순의 실타래가 아울러 얽힌 척박한 삶이었기에 그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함이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화가 고호........ 제가 처음 고호라는 화가를 제대로 인식한 것은 오래전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주 절친했던 고등학교 후배에게서 날라온 편지 한장...(정말 다시 읽고 싶었는데 못찾다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찾아서리...감격했슴요^^) 지지리도 글씨를 못쓰던 후배였는데 무려 삼일간에 걸쳐...강의실에서..체육시간에 운동장 계단에서..또 버스속에서 등등...그냥 생각나는데로 써나간 정다운 마음, 물씬 묻은 감동의 편지였답니다.
"그제 서두에 '거수'하고 시작되는 편지 한장을 받고 단숨에 읽어내려 갔습니다. 지금쯤 소양강가에 앉아 길게 담배를 뿜으며 생을 생각하고 또 죽음을 생각하는 형을 눈에 그려봅니다.언제나와 같이 천천히 흘려 쓰시는 필체에선 항상 덤덤하던 ...형의 꿋꿋한 자네를 봅니다. 그저께 펜을 손에 잡았다가 이내 내던지고...어제 시골에 내려 갔다가 오늘 오전에 다시 처음부터 씁니다. .............황혼녁에 씁니다 (마음이 그래지는). 이맘때가 시골에서는 가장 조용할 때입니다. 문 창호지를 붉게 물들이던 석양이 지면 어두운 그림자가 문에 짙어집니다. 언젠가 어릴때 그 방에 고독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지금은 행정학 시간입니다.10분이 넘도록 교수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앞에 앉아 있는 늙은 대학생이 '휴강하면 좋겠다'고 말하며 낄낄대고 있네요.......'
편지를 다시 보는 여운이 짠해서리 좀 길게 옮겨 보았습니다... 암튼 항상 철학적 향기를 풍겨 제게 즐거움과 우울함을 전하곤 했던 후배의 편지에 동봉되어 온 낡은 그림 한 장 !! 그 것은 잡지에서 찢어낸 '꽃핀 나무'라고 제목 붙혀진 화사한 복숭아꽃 그림이었습니다.그리고 뒷면에는 고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이....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그리고 그 후에도 오늘에 이르기 까지 고호의 '꽃핀 나무'라고 이름 붙혀진 이 편지글에서 느끼는 짙은 감동의 물결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암튼 이런 계기로 저는 고호를 가까이 하면서 한 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호는 화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6백여통이 넘는 편지를 동생에게 보냈답니다 ㅠㅠ)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는데요. 고호의 경제적 조력자이자..그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영원한 삶의 동반자, 테오!! 그림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삶을 동생 테오에게 낱낱이 전한 편지속에는 고호의 영혼의 그림자가 깊게 배어 있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는거 같아요.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그는 지독히도 가난한 생활을 했고, 생존시 팔린 그림은 단 한점, 그것도 단돈 몇 푼에에 팔린 걸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지금 고호의 그림은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의 최고가를 경신하는 대표적인 화가이자, '톱10' 안에 두개의 작품을 올릴 정도로 그 값어치를 인정받고 있으니...생전에 찢어지게 쪼달리는 환경에서 절망하며 산 고호가 더더욱 안타깝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지난 겨울 임신한 여자를 알게 됐다. 겨울에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임신한 여자….
그녀는 빵을 먹고 있었다. 하루치 모델료를 다 주지는 못했지만 집세를 내주고
내 빵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배고픔과 추위에서 구할 수 있었다(1882년 5월)'
어쩌면 지독히도 가난한 고호였을지언정, 이렇게 인간적인 심성을 가졌기에 그의 그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사는 동안은 힘들었지만 아무튼 그는 지구별이 있는 한 가장 존경받는 화가로 남아 우리에게 영원히 감동을 줄 것입이다. 여기에 고호에 대한 모든 것을 실을 수는 없구요^^ 그의 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다소 중복이 되네요^^) 다이제스트 일대기와 몇 개의 글을 옮겨 놓았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짧게 인생을 마감한 위대한 화가 고호의 고통스러웠던 체취를 느끼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아울러 위대한 작품을 남긴 화가의 생을 되집어 보는 것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감상자의 기본 자세이며.. 훌륭한 화폭을 남긴 사자(死者)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고도 생각합니다...제가 좋아하는 고호의 편지 한편 먼저 싣구요^^고호의 숨결과 자취 서린 멀고도 먼 고호 시대로의 긴 여정을 시작할까 합니다.......
꽃핀 나무 -모오브의 추억 (1888)
나는 집밖의 과수원에서 20호의 유화로 갈아놓은 연보라의 흙,
갈대 울타리, 멋있는 푸른 색과 흰색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두 그루의 장미빛 복숭아 나무를 그렸다.
아마 내가 그린 최상의 풍경화라고 생각한다.
마침 그 그림을 가지고 돌아 왔을때 누이한테서
모오브의 죽음을 알리는 홀랜드말로 된 편지가 왔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내 마음을 사로 잡고
내 가슴을 감동으로 가득차게 했다.
나는 그림 속에 "모오브의 추억으로...빈센트와 테오" 라고 써 넣었다.
네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둘이서 이것을
모오브 부인에게 보내기로 하자.
모오브의 추억속에는 무엇인지 포근하고 무척 명랑한 것이 있다.
정색을 한 습작보다는 이런 기분의 그림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자(死者)를 죽었다고 생각치 말라.
생자(生者)가 있는한 사자는 산 것이다.
사자는 산 것이다.....
내가 고르고 싶은 것은 슬프다기 보다 이런 느낌의 그림이다.
아마 빈센트 반 고호만큼 생전에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사후에 많은 조명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호는 극빈자에다 자기학대와 자해도 서슴지 않은 사람이었고, 숨돌릴 틈 없이 쫓겨 다니는 도피자였다. 고호가 죽은지 100년이 지난 1990년 그가 그린 '가셰 박사의 초상'은 일본의 한 보험회사 그룹에 8,2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1853년 반 고호는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에서 태어났고, 한 화랑의 견습생을 시작으로 어학교사, 설교사, 책방 점원, 신학공부, 선교활동, 탄광에서 노동자의 삶을 이어갔으며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아 그들과 같이 탄광에서 1년을 보냈다.
1880년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불꽃을 발견하였고 연필과 숯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삶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예술로 도피한" 기나긴 여행의 출발이었다.
1885년(죽기 5년전) 가을 고호는 안트웨르펜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나 기괴한 화풍과 거친 태도로 사람들과 부딪히며 쉽게 화합하지 못하고 석달만에 그만두었다.
1888년 프랑스 프로방스 아를르에 400여일 동안 머무는 동안 무려 350여 점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동생 태오가 보내주는 돈은 술과 유곽에서 탕진하였다. 그해 12월 고갱이 아를르를 떠나려 하자 면도칼을 들고 그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그를 곱게 보내주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면도칼로 오른쪽 귀를 잘라 신문지에 싸서 매춘부에 주었다.
1889년 그는 말없는 분노 속에서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 당시의 그림 주제는 뜨겁게 달아 오른 태양, 순환하는 별들,슬픈 얼굴들, 활활 불타오르는 실측백나무였다.
1890년 7월 27일 고호는 뜨거운 햇볕이 이글거리는 밀밭으로 달려갔다. 손에는 리볼버 권총을 들고.... 까마귀를 쫓는다면 명분으로 빌린 것인데 그는 그 총으로 자기 자신의 복부를 쏘았다. 그리고 40시간 후에 죽었다.
- 볼프 슈나이더 <위대한 패배자>에서
생 레미 정신병원
1853.3.30 홀랜드 북부 브라반트의 쭌데르트에서 한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다.
그 일년 전에 같은 이름을 지어준 형이 태어 났으나 곧 죽다.
세 사람의 백부가 있었는데 모두 화상(畵商)이었다.
1857. 4세 5월 1일 동생 테오가 태어나다.
1861. 8세 마을의 학교에 들어 가다.
1869. 16세 큰 아버지 빈센트의 주선으로 구필상회 헤이그지점에서 근무하다.
1872. 20세 동생 테오와 서신교환을 시작하다.
1874. 21세 하숙집 딸에게 애정을 호소 했으나 거절 당하다.
낙망하여 홀란드로 돌아오다.
1875. 22세 파리로 거처를 옮기고 성서를 탐닉하다.
1876. 23세 에텐의 부모 곁으로 돌아가다. 4월,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 교사가 되다.
7월에는 보조 설교사가 되었으나 12월에 에텐으로 돌아오다.
1877. 24세 5월, 암스테르담의 얀 백부 밑에서 대학 신학과에 응시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
1878. 25세 7월, 공부를 포기하고 에덴으로 돌아오다.
8월, 브뤼셀의 전도사 양성소에 들어가 석 달 동안 연수를 받았으나 연수기간이
지나도 전도사에 임명되지 않자, 자비로 보리나쥬의 탄광 지대로 가다.
1879. 26세 1월, 여섯달 간 잠정적으로 임시 전도사로 임명되다.
탄광이 폭발하고 스트라이크가 일어나자 부상자와 병자를 헌신적으로 돌보다.
방랑생활을 하다.
1880. 27세 계속 방랑생활을 하다가 이 해 여름 화가가 될 것을 결심하고 데상을 시작하다.
1881. 28세 에텐에 돌아오다. 헤이그에서 마우베의의 지도를 받다. 사촌동생 케이에게 구혼했으나
거절 당하다. 아버지와 의논한 결과 헤이그로 가서 마우베의 지도를 받다.
1882. 29세 1월 임신한 창녀 크리스탄과 알게되어 동거를 하다.
그녀를 모델로 하여 '슬픔'을 그리다. 7월,크리스틴이 출산하다.
1883. 30세 크리스틴과 헤어지다. 12월, 누에덴의 가족에게로 돌아오다.
1884. 31세 유화를 많이 그리다. 카톨릭 교회의 관리인 집을 빌려 아틀리에로 하며 기거하다.
열살 위인 마르고트와의 결혼을 생각했으나 그녀의 가족이 반대하다.
1885. 32세 농민들의 인물 습작에 몰두하다. 3월 아버지가 죽다.
4,5월,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리다. 11월, 누에덴을 떠나 안트워프로 가다.
1886. 33세 안트워프의 아카데미에 들어가다. 신경과민 증세가 점점 더 심해지다.
3월, 파리로 가서 테오와 함께 지내다. 로트렉, 베르나르를 사귀다.
테오와 함께 몽마르뜨의 로픽끄로 옮기다.
1887. 34세 인상파 화가들과 많이 사귀다. 음주와 퇴폐적인 생활로 건강을 해치다.
1888. 35세 2월, 파리를 떠나 아를르로 가다. 노란 색의 집을 빌려서 거주하며 작품에 정성을 쏟다.
6월,지중해를 여행하다. 10월,고갱이 아를르에 오자 공동생활을 시작하다.
11월, 돌연 발작을 일으켜 스스로 귀를 자르고 2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하다.
고갱 아를르를 떠나다.
1889. 36세 아를르의 병원과 노란집을 오가며 생활하다. 다시 발작을 일으키다.
아를르 시민의 요청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다.
4월, 테오가 결혼하다.
5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다. 병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다.
7월, 세번째 발작을 하고 겨울 들어 다시 발작하다.
1890.37세 5월, 생레미를 떠나다. 파리의 테오에게 있다가 오베르로 가다.
브뤼셀 20인전에 출품한 '붉은 포도밭'이 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백프랑에 팔리다.
가쉐의사와 사귀다. 이 때 겨우 석달 동안 80여점의 그림을 그리다.
7월 27일 자살을 꾀한 후, 29일에 테오가 지켜 보는 가운데 죽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 있는 그 자체이다'라는 말을 남기다)
형의 죽음을 접한 테오도 10월 정신착란을 일으켜
1991년 1월 우트레히트의 병원에서 죽다.
테오, 오베르에 있는 조그만 묘역에 형 고호와 함께 묻히다.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 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가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테오에게>
별이 빛나는 밤(1889)...고갱과 크게 다툰 후..자신의 귀를 자르고 상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해 때 그린 그림. 고요하고 아늑한 밤하늘이 아닌 마치 거센 파도를 밤하늘에 옮겨 놓은
듯 하다. 휘몰아치는 그의 붓 끝에서 어두운 강렬함이 묻어 나지만..
하늘에 떠있는 빛나는 별들은 왠지 슬픔을 자아낸다.
아를르 포룸광장의 카페 테라스(1888)- 아를르에 머물렀던 고호는 어느 정도 행복한 시기였을까?
하늘에는 쏟아질 듯 별이 떠 있고 카페거리에서 한가로히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밤의 쓸쓸함, 적막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낭만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이다.
'특히 푸른 밤하늘에 별을 그려 넣을 때 정말 즐거웠었다'고 고호는 동생 테오에게 말하곤 했다.
테오, 나는 지금 아를르 강변에 앉아 있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고 있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을까..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구나.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나는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 빛의
흐름을 느낀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 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의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 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갈 것 같기도 하구나.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지...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고 있고...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 갈 수 있을까.
Twilight blue !!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내려오고 있구나.(1889.9 )
르노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 테오에게 보낸 습작(위 그림)
노란 집(1888)- 이 그림은 그가 꿈꾸던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폴 고갱의 빈의자(1888)- 아를르에 함께 지낼 때 고갱이 사용했던 의자
고호의 자화상들(1887-1889)
생전에 400프랑에 유일하게 팔린 '아를르의 붉은 포도밭(1888)'
1990년 경매사상 최고가(8,200만불)에 팔린 '가셰박사의 초상(1890)'
반 고호가 그의 생애 마지막 시간을 보낸 '오베르의 평원(제작년도 미상)'
종달새가 있는 밀밭(1887)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 자살하기 직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1887년에 그린 위 그림과
비교해보면 그의 고통과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듯....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느껴진다.
이젤 앞에서의 자화상 (1888)- 고호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였지만 그의 눈에 보여진 세상을 가득 채운
색깔들을 그만의 정신세계에서 녹여내며 그만의 독특한 화풍과 색채를 만들어 낸 최고의 예술가였다.
비록 그의 예술세계가 외롭고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삶을 구원하진 못했지만...
세계 미술사에 크나큰 획을 그은 그의 그림들은 충격으로..슬픔으로..아름다움으로 진하게 다가온다.
" 아, 테오야,
지나간 쓰라린 몇 달 동안 나는 무엇인가를 향해 열심히 일하며,
내 인생의 진실한 목적과 의미를 캐내려 노력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걸 몰랐다니 !
하지만 이제 그것을 알았으니 난 다시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테오,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그 몇 달을 헛되이 지낸 뒤에 마침내 천분을 발견했다는 얘기야 !
난 화가가 될거다. 물론 화가가 되야지. 꼭 그래야만 해.
그 때문에 다른 모든 일에 난 실패 했던거야.
그런 일들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결코 실패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을 찾았구나.
아, 테오. 감옥이 마침내 열렸다.
그리고 그 감옥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너야! "
" 그 무엇도 우릴 갈라 놓을 순 없어, 형. 우린 다시 함께야, 그렇지, 형?"
" 그래, 테오,영원토록.." (고호와 테오의 편지에서)
위 글에는 관련 자료의 글을 인용하고 발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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