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어느 푸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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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과 같이
서로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는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서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과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89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140899 성석제 소설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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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교 들어가서 1학년 때 만났어요. 1학년 2학기 때. 그 친구는 이미 연세 문학회를 하고 있었고,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써 왔어요...동시가 아니라 진짜 시를. 본인이 직접 손으로 필사를 해서 시집을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재능도 있고, 촉망 받는 준 시인이었죠. 1학년이라도. | | | | 재능이 있었어요. 시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이야기도 잘 하고. 그래서 친구들도 많았고, 인기도 있었어요. 공부도 잘 했죠. 졸업할 때 학점이 4.0 만점에 3.8. 거의 계속 장학금 받고 다녔고, 졸업할 때 전체 수석할 뻔 했는데. 몇 점 차이로 전체 차석을 했죠. 기질적으로도 낙천적이었어요. 시를 쓰기 때문에 조울적인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죠. 어떤 때는 지나치게 명랑하다가 어떤 때는 왜 저렇게 우울할까, 싶기도 하고. | | | | 생김새는 곱슬머리에, 그리스 조각 같은 데 나오는 다비드 상처럼 각이 좀 있는 이국적인 느낌이었어요. 기억력이 아주 뛰어나고. 멋을 내서 옷을 입으려고 그랬으나...(웃음) 어쨌든 본인은 스스로 색채 감각이 있다. 옷을 잘 맞춰입는다고 생각했죠. 독서량이 굉장히 많았어요. 아마 독서량이 친구들 중에 가장 많지 않았나. 아주 여러 방면으로, 늘 책을 끼고 다녔고. | | | | 집이 같은 방향이었어요. 같은 단과대에 같은 서클에, 수업도 같이 듣고, 집에도 같이 가고. 운 없으면(웃음) 아침 버스에서 만나서 서클룸에 갔다가 같이 도시락 까먹고 우리 집에 가서 자고 다음 날 같이 나가고 그랬죠. 안 친할 수가 없었어요. 그 친구는 시에 관해서는 굉장히 진지한 태도였어요. 거의 집착에 가깝게 매달려 있는 스타일이고. 나는 정 반대였죠. 왜 그렇게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서로 차이가 있으니까, 궁금한 게 생기잖아요. 난 ‘왜 이렇게 그러는데’ 라고 묻고. 그는 나에게 ‘왜 그렇게 안하는데’ 라고 묻고. 살아온 것도 관심사도 다르고...이런 다른 점들이 친하게 만들었어요. | | | |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아주 확실했죠. 시를 쓰겠다는 것이 아주 확고했어요. 시가 제일 처음이고, 그 다음이 산문이나 다른 문학. 그 다음이 의미가 있다면 시인이 되는 것. 시를 쓴다는 것에 굉장히 몰입해 있었고 분명했어요. | |
| | | 그림그리기를 즐겨한 기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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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실험적인 것도 있었고 젊으니까..그때는 학생이어서 대사회적인 관심이나 발언은 적었어요. 80년대는 많이 변했지만, 70년대, 우리 1학년 때는 그러진 않았어요. 좋아하는 시인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시인들 릴케라든가 엘리엇, 예이츠의 시를 좋아했죠.
⊙ 기형도 시인이 좋아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 [T.S 엘리엇]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 | |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 본질에 대한 관심을 깊이 파고들어가서 쓰는 시. 반면에 남한테 발설해 버리는, 시대와 함께 소멸하는 그 역할을 다 하는 그런 시는 별로 쓰지 않았어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버리는 스타일은 좀..뭐랄까 싫어했죠. 정제되고 완성도가 높은 시를 쓰고 싶어했어요. 나오는 대로 내뱉어 버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죠. | | | | 한 편의 시를 예닐곱 번을 정서를 하는데, 그때마다 조금씩 바뀌어요. 토씨 하나, 단어 하나. 점 하나. 나중에 시집을 내려다 보니까 한 시를 너무 여러 번 써서 어느 것이 정본인지 모르겠더라구. 은밀한 작은 차이지만, 그런 것이 단련의 과정 중의 하나였던거죠. 학교 때는 그렇게까지 쓰는 지는 잘 몰랐어요. 나중에 (죽고 나서) 집에 있는 공책을 가져와 보고서야...정말 지독하구나 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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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줍음이 많고…친한 사람은 아주 친하지만 친하기 전에는 낯을 가렸죠. 느끼한 것 하고는 거리가 멀고.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친구였어요. | | | | 79년에서 89년이니까 10년이죠 | | | | 당구, 고스톱. 바둑, 문어다리... 맨날 길에서 파는 문어다리 사가지고 씹고 다녔어요. 난 제발 좀 그만 먹어라, 그러고. 늘 재미있었어요. 늘 쉬지 않고 놀거리를 생각해 내고, 그리고 또 하나. 걸어 다니는 것. 아무데나, 바람을 느끼면서 걸어 다니는 걸 참 좋아했죠. 참 무지 무지하게 걸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교정에서 노래를 부르며 화음 맞춰가며 걷기도 하고. 걷는 데는 이골이 날 정도였어요. | | | | 먹고 살기 위해서. 시를 쓰기 위해서라도, 직장은 가져야 했어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거뜬하게 붙었어요. 시험 한 번 보고, 취업 재수도 없이 중앙일보 갔죠. 84년이었나. 방위를 갔다 와서 빨리 취직을 했고,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죠. 시인으로서도 우등생이고 직장 취업에서도 우등생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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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 문예는 1월 1일이 공식 발표일이고, 저는 당선 통지 받은 그날 만났어요. 아는 선배랑 남대문 당구치고 있는데, 갑자기 찾아 왔어요. 어떻게 왔냐고 그랬더니 내가 기자인데 모르겠냐고 그러면서 당구공을 들어서 판을 깨요. 왜 그래 임마 그랬더니 공을 든 채로, 이번에 신춘문예에 시가 됐다고. 나는 공 놓고 얘기하라고. 같이 있던 선배가 잘했다고 그러니까 공을 놓더라구. 잘 됐네. 그러고 계속 당구를 쳤죠. 셋이서 내기 당구를 치고 저녁을 먹고. 기분 좋았죠. 굉장히 좋았죠. | | | | 문명 비판적이고, 젊고 신선하다. 많이 발표하는 편이었고, 평가도 좋았죠. 아주 바빴어요. 1년에 열 편 정도 꾸준히 발표했고, 발표할 때마다 월평에 자주 올랐죠. 김현 선생이 중앙일보에 월평을 할 때인데, 중앙일보 기자인 기형도 시가 좋다고 추천을 하려고 하니까, 자기가 중앙일보 기자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부장을 찾아가서 빼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김현 선생이 완강하게 무슨 소리냐고. 기자라고 해서 넣은 게 아니라고 하셔서, 올라간 적도 있어요. | |
| | 첫 시집을 내기로 이미 결정이 되어있었어요. 89년 쯤 내려고 본인이 예정을 하고 있었는데, 유고 시집이 5월에 나왔습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어요. 본인이 평소에도 문지에서 첫 시집을 내고 싶었다 그랬고. 김현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였고.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그런 게 그 때 그 친구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게 인생 전체를 좌우할 정도로. 어떤 시를 내고,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시집을 내는가. 그게 인생의 제일 먼저예요. 첫째가 시, 둘째가 시, 셋째가 시, 넷째가 월급...장가. |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1989년 3월 7일 새별 3시 30분경, 종로 2가 한 극장 안에서 죽었다. 그의 가장 좋은 선배중의 하나였던 김훈은 “나는 기형도가 죽은 새벽의 심야극장 - 그 비인간화된 캄캄한 도시공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선택한(과연 그가 선택한 것일까. 차라리 운명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 인용자) 죽음의 장소는 나를 늘 진저리 치게 만든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다.
< 입 속의 검은 잎> 해설 : 영원히 닫힌 빈방의 체험 中에서 (김 현) 전체내용보기 |
| | | | 평소에도 심야 극장에서 시간도 보내고, 잠을 자기도 하고 그랬어요. 집이 광명이라 가기가 멀었거든요. 영화도 좋아했고. 가끔 흥분해서 밤 중에 전화가 와요. 어떤 영화를 봤는데 너무 멋있다. 지금 당장 택시타고 오라구...입장료 내준다고. 그 영화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죠. 가면 막 설명을 해줘요. 자기는 세 번을 봤다던가. 가끔 있는 일이었죠.
⊙ [영화] 기형도 시인이 3번을 봤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어느 날 아침에 출근했다가,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어요. 병원이라고. 너무 놀랬어요.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적십자 병원이었는데, 어떻게 갔는지를 모르겠어요. 가보니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다 정신이 없어가지구. 이렇게 해서 안되겠다 해서. 그때부터 수습을 하기 시작했죠. | | | | 첫 시집도 내기 전이예요. 그러니까 얼마나 젊어요. 친구들이나 가족들 말할 것도 없고 너무나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아직도 그 상태에서 자유롭다고 하기 어려워요. 너무 젊고 아름다울 때 죽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도 늙었고...(웃음) 가장 가까웠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 책임질 것이 있기 때문에 아프다고 피할 수만도 없는 거죠. 이렇게 얘기도 하는 거고.. | |
| | | 같이 여행 간 것. 대구, 부산, 춘천, 강촌...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부시시한 모습으로, 돼지발톱을 깎다가 돌아보고 그랬던 것. 아버지가 일찍 앓아 누우시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어머님이 돼지를 키웠거든요. | | | | 그냥 있으면 안되겠다. 뭔가를 해야 되겠다 해서 친했던 사람들이 모였죠. 복사해서 시도 돌려보고, 미발표작도 선정해서 넣고 교정봐서 시집을 냈죠. 그때 다들 자기 시집 내듯이 열심히 했어요. 성석제, 이영준, 원재길, 조병준, 박해현… | | | | 시 자체의 속성보다도 짧았던 생 때문에 그랬던 것 아닐까요. 그건 갑자기 중단된 청춘이거든요. 그 비극성도 있을 것이고. 시 자체에도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조건에 대한 어두운 성찰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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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도리) 어떻게 좋아해요.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런 게 아니구...기형도 책을 한 4권을 냈나. 거의 외울 정도가 됐어요. 하도 들여다 보니까 내가 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나라는 인간의 일부가 된, 어떻게 떼어낼 수도 없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 | | | 그렇겠죠. 아마 계속 시를 썼을 거예요. 나는 그 친구가 가고 난 뒤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아마 계속 썼을 거예요. | | | | 우리 다 잘 있다! 라고 해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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